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으므로.
육아 세계에는 커다란 두가지 숙제가 있다. 수유텀과 수면교육. 수유텀은 보통 100일 전후로 어떻게 되었든 거의 예측이 가능해지지만 수면교육은 문제가 다르다. 4개월 이전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그 이후로는 무조건 울려야만 가능하다는 썰이 많아서 그 시기의 엄마들을 초긴장 상태에 몰아넣는다.
나 역시 그랬다. 재워야하는 타이밍이 올 때마다 엄청난 압박감에 사로잡혔고, 특히나 젖물려 재울 때는 자책에 빠져 그 다음 텀에는 그러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나 잠투정이 아주 심한 밤잠 타임에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결국은 과호흡이 오기도 했다.
엉엉 우는 우주를 다시 안아들고 아기띠를 해서 재우고 난 뒤에는 왜 난 되지 않는 걸까 끝없는 물음과 함께 절망하며 밤을 보냈다. 그렇다고 교육이랍시고 우는 아기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내 맘이 너무 아파서 그랬다. 그러면 안된다던데. 그래도 할 수 없었다.
일찌감치 수면교육에 성공했다는 언니, 이제 누워 재우기를 시도한다는 친구, 아기가 울어도 안아주지 말라는 조언들... 무엇보다 여러 말들에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결심했다. 나는 억지로 아기를 울려서 혹은 우는 걸 내버려 두어서 어떤 결과를 얻어내지 않겠다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는 도움을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150일이 지나고 나니 같이 누워있다가 스르르 잠드는 날이 한번씩 생기기 시작했다. 우연인가 싶을 만큼 그 다음 텀에는 여지없이 잠투정을 부려 안아재우긴 했지만, 그것으로 우주를 기다려줘도 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됐다. 졸릴 때는 먼저 같이 눕기로 한 룰은 꼭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우주가 같이 누워 칭얼거리다 품 안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그 다음 낮잠도, 그날의 밤잠도 모두 그렇게 잠들어 어느 날 갑자기 아기띠와 둥가둥가를 졸업했다. 내가 결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기다려주니 스스로 할 수 있구나.
우주 본인은 스스로 잠들었다는 성취에 대해 큰 감흥이 없겠지만 나는 너무 기뻤다. 이제 더 이상 내 무릎을 갈아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로 인한 기쁨 그 이상이었다. 기다리면 아기의 때에 맞춰 자랄 거라는 믿음. 믿음이 열매를 맺는 순간을 목도하는 짜릿함이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요즘의 육아상식들은 모든게 교육으로 치중되고 있는 것 같다. 한발 앞서 아이를 그 다음으로 도약하도록 엄마가 늘 ‘무언가’를 해줘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아기는 스스로 자라난다. 먹을 것을 제때 주고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다른 것은 자기의 때에 맞추어 큰다고 믿는다. 모든 아이가 같지 않은데 어떻게 일률적인 교육방식이 맞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우주와 나의 관계는 내가 끌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우주와 같이 걷는 모양이고 싶다. 우주보다 앞서 어떤 표지판을 들고 따라오라고 손짓하지 않고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걸으며 표지판도 같이 관찰해나가고 싶다. 그림을 다 그려놓고 우주에게 색칠하라 하지 않고 같이 밑그림부터 그리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우주가 스스로 선택한 그 때를 발견하는 기쁨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