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이 모여 우리가 되고.
엄마집을 떠나 혼자 아기를 돌보던 세 달 동안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다. 근원은 걱정. 망상에 가까운 걱정이었다. 잠에 들 때마다 우주든 나에게든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내가 눈을 못뜨는 상황이 생기면 우주가 깨서 배가 고플텐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우주가 굶주려 큰일 나면 어떡하지. 망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끊기가 어려웠다. 걱정은 또 걱정을 낳아, 삶의 근원적인 문제까지 파헤치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진지했다. 우주가 나를 왜 낳았냐고 원망하면 뭐라고 말을 해줘야하나. 사는게 힘들텐데 나는 왜 아기를 낳았을까. 우주가 살기 힘들다고 하면 난 뭘 해줄 수 있을까. 어른이 되어 독립하는게 쉬운 일은 아닌데.
심리적인 부담감과 압박은 과호흡으로 이어졌다. 한약을 복용하고 2개월만에 증상에 차도가 생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기가 수월해졌다. 그리고 우주를 바라보는 내 눈에 걱정이 가시고 사랑이 더 크게 피어올랐다. 우주와 시간을 보내며 큰 소리로 웃는 날이 많아졌다. 갑자기 왜 더 많이 귀여울까. 더 많이 사랑스러워졌을까. 나를 웃게 하는 우주의 모습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눈부신 성장이 주는 기쁨이었다. 몸과 마음의 회복이 비단 한약에만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 전, 본격적인 육아의 세계로 들어오기 전에 육아를 떠올리면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아기와 눈을 맞추고 재밌게 놀아주고 교감하며 사랑이 피어나는 장면만 떠올렸다. 육아의 현실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마치 나는 그런 육아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런데 내가 낳은 생명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개를 양쪽으로 돌리는 일 뿐인 핏덩이. 먹고 자고 싸는 생명 유지 장치를 모두 도와주어야 하고 교감은 커녕 나를 똑바로 쳐다보기 까지도 한참이 걸렸으니 엄마가 아니라 육아 기계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졸려도 울고 배고파도 울고 배가 불편해도 울고. 할 줄 아는 표현은 울기밖에 없는 존재. 목 놓아 울때면 아기는 원래 그런 줄 알면서도 마음이 미어졌다.
그러던 우주는 7개월 즈음 부터 한참동안 엎드려 뻗쳐를 마스터하더니 8개월 끝자락, 혼자 앉는 방법을 터득했다. 처음으로 제 몸을 움직여 포지션을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가드에 등을 쉽게 기댈 수 있으니 침대에서 열심히 연습해보다가 어느 날 거실 한복판에서 성공했다. 잠에서 깬 우주를 거실에 잠시 뉘어두고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혼자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으니, 잠에서 깼을 때도 울지 않았다. 일어나 앉아 방을 구경하거나 멍 때리기도 하고 하여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곁에 두면 이것저것 만져보며 골라서 놀기도 했다. 목욕할 때도 앉아서 자유롭게 놀게 되니 씻기기도 수월해졌다. 잠든 우주를 카메라 너머로 바라보며 언제 깨서 울려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데 이것 저것 장난감을 새로 가져다주지 않아도 제 취향대로 골라 놀 수 있으니 좋고, 가누지 못하는 몸을 잡고 아등바등 씻겨주지 않아도 되니 이제 목욕시간도 놀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포인트에 우리가 눈을 맞추고 웃고 있었다. 우주와의 시간에 '재미'가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니 우주가 나중에 왜 인생이 이렇게 힘든데 날 낳아 놨냐고 묻게 되는 순간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냥 지금을 함께 재밌게 보내면 그만이지. 나의 삶을 잘 가꾸고 우주에게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주면 확신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우주가 삶은 불행하다고 단정짓는 일은 없지 않을까. 매일 다짐한다. 오늘도 우주와 좋은 기억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