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게 배우는 행복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우주와 지내는 매일이 즐겁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부모의 시간을 위해 카페에 따라온 어린 아기가 행동의 통제를 받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면 도대체 왜 저렇게 하면서 까지 카페에 나와서 놀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기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데도 부모는 달래기만 할 뿐 자리를 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을 때면 참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육아는 아기를 낳아봐야만 절절히 이해가 되는 걸까. 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숨을 쉬어야 했기 때문에 그랬겠다, 이제는 마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기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그것만으로 내 자아가 온전히 돌보아지지는 않는다. 눈을 뜬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시간까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달리기에 매일 참가한다. 체력은 필요한 에너지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고 나를 돌보지 못한 마음은 매번 뒷전이라 어딘가에 방치되어있다. 혼자였을 때를 흉내라도 내 볼까 싶어서 어디라도 나가는 나를 발견했다. 끌려다니는 우주를 한 번씩 돌아보며, 여러 번 '괜찮겠지?'를 되뇌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새는 그런 마음이 없어졌다. 어딘가로 나가야만 숨 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남아있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요새'라고 밖에 표현이 안된다. 도대체 갑자기 이게 무슨 신경의 변화일까. 적어도 우주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는 탈출을 향한 갈망이 계속 마음 한편에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애써 웃음을 보이던 내 얼굴이 깔깔깔 육성이 자주 터져 나올 만큼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나를 보며 웃는 우주를 담은 내 눈이 어찌 웃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뭘 하며 놀아야 하나 고민은 되는데, 뭘 해줘도 반응이랄 게 없는 8개월의 시간을 지나 9개월 차의 우주는 상호작용이 폭발적으로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혹시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간혹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언제든 잘 웃는 아기였지만 어떤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제대로 못 놀아줘서 그런가 싶어 이것저것 발달놀이를 찾아서 해줘 봐도 흥미가 없으니 여러 번 실패 후에는 그것도 포기해버렸는데.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마주치는 우주의 눈빛이 매일 새로워지더니, 우주는 정말 우리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되었다. 내가 앞장서서 기어가면 졸졸졸 따라 기어 오고, 서방구와 둘이 식탁에 앉아 있으면 자기도 하이체어에 앉아 함께 있으려고 한다. 엄마, 아빠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우리 집에 2일 이상 머무르면 이튿날에는 친근함의 표시도 하고, 무엇보다 어떤 사물을 잡고 열심히 걷기를 시도하는 모습이 제법 사람 같다.
그러니까 나는 우주랑 둘이 있으면 이제는 정말 사람 두 명이 있다고 느껴지게 되었다. 우주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놀게 되었다. 친한 친구와 놀듯이 말이다. 동심으로 돌아가 단순한 즐거움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매일이 새롭고 흥미로운 우주의 눈빛을 보면서 나도 또한 그 눈빛을 닮아가려 하니 재미없는 시간이 없다.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는 법을 아는 작은 친구와 보내는 요즘, 나는 그 친구에게 행복을 다시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