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지 21-9

엄마

by 마이문

서방구의 마지막 출장을 앞두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결국 엄마를 불렀다. 껌딱지도 그런 껌딱지가 없을 정도로 절대 혼자 있지 않는 우주와 단 둘이 일주일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득했다. 긴 긴 출장 일정이 이어지도록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와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오늘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얼마나 힘들기에 엄마를 불렀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왜 그간 엄마를 부르지 않았나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가 고생하니까 미안해서 부르지 않았던 것도 맞다. 엄마는 많이 아프다. 섬유근통이라는 질환과 10년이 넘도록 동반자처럼 함께 하고 있는데, 그냥 온몸이 아프니 가만히만 있어도 기운이 쭉쭉 빠지는 병이라 엄마가 나 때문에 밥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게 너무 미안했다. 우주가 100일이 될 때까지 시켰던 고생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런데 엄마와 우리 집에서 지낸 시간이 사흘을 넘기고 나니 새로운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나 스스로 성격의 결함이라고 느꼈던 여러 가지 부분도 함께.


이상하게 엄마랑 대화를 하면 불편하다. 눈을 맞추고 엄마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엄마가 너무 좋다. 엄마 없는 삶은 상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진다. 엄마가 좋은데 왜 불편한지 생각해볼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결혼 전엔 엄마가 가진 말씨의 오류들을 교정해주느라 엄마에게 상처를 준 일이 많았다. 결혼 이후에는 자주 만나지를 못하니까 상처 준 지난날이 미안해서 불편함을 누르고 감추며 엄마와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그 불편함을 꺼내보지 않았다.


불편함을 누를 수 있는 한계점은 아마도 3일이 채 안되나 보다. 엄마의 말에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편함이 누르기도 전에 다시 찾아오니,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폭탄처럼 터질 것만 같았다.


엄마는 습관처럼 '~는 이래야 해.', '~는 이렇게 해야 더 좋아.'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한다. 가령 아기를 씻기고 있을 때면 손가락 발가락 사이사이 잘 닦아줘야 한다는 말을 볼 때마다 한다던지, 언어 발달을 위해 왼쪽 팔을 닦을 때는 왼쪽 팔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닦아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던지. 이유식을 담고 있으면 그걸 다 먹느냐고 너무 많다고 하는 말을 이유식 담을 때마다 하기도 하고,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식의 말을 많이 건네서 같이 있는 내가 무안할 때도 많았다. 이제껏 삶을 사는 동안 엄마가 선택했던 지혜로운 방식, 그로 인해 얻었던 좋은 경험들을 마치 진리인 듯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하거나 추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엄마를 오랜만에 만나면 반가움과 동시에 긴장이 오곤 했다. 내 행동의 검열과 함께 엄마가 무어라고 평가할지 눈에 선하니, 반박하기 위해서 미리 경계하려고 온몸에 힘을 주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 집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정확히 세 번째로 이유식 좀 적게 담으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참다 참다 그만 좀 하라는 말을 돌려 이야기했다. 뭘 하든 다 내 나름의 이유가 있고 방식이 있는데 묻지도 않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내가 너무 답답하다고. 엄마는 대답 없이 애매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전처럼 다그치듯 건넨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냥 참고 넘어가도 될 일이었는데 괜히 말했나 싶어 그날 밤 다시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왜 불편할까.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기면 되는데 왜 못 넘기고 화가 날까. 그간에는 엄마가 사람을 참 불편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답은 나에게 있었다.


나는 나만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가고 실행하는 게 즐겁다. 그게 주류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특별하고 재밌는 일이 된다. 그래서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내 방식'을 찾는 오랜 습관이 있다. 그런데 엄마도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엄마는 그 방식을 가르쳐주기를 좋아하고, 나는 나에게 내 방식이 있듯 남에게도 그에 맞는 최적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이 두 가지는 성격적 차이일 뿐인데 무의식 중에 내 생각이 더 옳고 더 낫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남을 가르치는 엄마가 불편했고 모두가 불편할 거라 지레짐작 해왔다.


동생은 엄마가 늘 자기 얘기만 하고 싶어 해서 불편하다고 했었는데, 왜 그렇게 자기 얘기만 한 건지 이제 이해가 조금 될 것도 같다. 가르쳐주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어쩌면 하루 종일 엄마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기만의 방식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자꾸 지나간 삶에서 만든 자랑스러운 방식을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일 하면서 만든 엄마의 방식을 얘기해주고 싶고, 더 나은 방식을 제시해주고 싶어서 늘 안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생각에 가 닿으니 엄마가 조금 편해졌다. 내 방식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방식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여기니 가슴 한구석을 꽉 막고 있던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나랑 비슷해서 그랬구나.


며칠에 걸쳐 적은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엄마는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그래서 정리해본 생각을 함께 나누지 못했는데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우리가 이렇게 닮았노라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제는 엄마가 언제 와도, 엄마를 언제 봐도 마음이 편안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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