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 20일
우주에게 베개로 내어주었던 왼팔을 빼내고 깊게 숨을 마셨다 내쉬며 하루를 돌아본다. 우주의 웃음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밤잠을 재우고 나면 환청처럼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리곤 했는데, 이제는 같이 놀았던 장면이나 나를 바라보던 우주의 눈빛과 웃음소리가 떠오르는 걸 보면 팽팽했던 긴장도 어느샌가 많이 놓아진 것 같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에 몰입하기로 마음먹은 후, 하루를 촘촘하게 쪼개어 들여다보았다. 어떤 생각이 몰입을 방해하는지, 어떤 순간에 몰입이 어려운지. 며칠간 3인칭 시점으로 관찰해보니 몰입 방해꾼은 '쉬고 싶다.'는 생각에 있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더 누워있고 싶고, 우주랑 놀다가도 눕고 싶고, 우주가 잠들면 나도 따라 푹 자고 싶고, 미룰 수 있다면 집안일은 한번쯤 눈 감고 싶고, 하루 종일 쌓아둔 설거지를 해야 할 때는 한숨이 절로 나오고 그랬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하기 싫은 것만 하다가 끝나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 무슨 불행한 인생인가. 쉬고 싶다는 생각에 끌려다니기만 하는 인생이라니. 적어도 우주가 내 품을 떠나 홀로 설 때까지는 이렇게 살아가야 할 텐데 그럼 최소 20년을 불행하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누군가 나를 이 삶에 몰아넣은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해서 살고 있는 삶인데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쉬고 싶다는 몰입 방해꾼이 스멀스멀 다가오면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하고 있는 일에 집중했다. 아침에는 얼른 눈을 뜨고 우주와의 포옹에 집중했다. 배고픈 우주에게 식사를 차려주고 낮잠에 들기 전까지 급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핸드폰은 멀리하고 우주와 보내는 시간에 집중했다. 낮잠시간에 함께 누워있다 보면 나도 스르르 잠에 드는 건 거부하기 힘드니, 우주보다 반만 자고 얼른 일어나 점심식사 준비에 집중했다. 일찍 깨면 일찍 깨는 대로, 더 많이 자면 그 나름대로 스케줄에 맞춰서 혹여 잠시 숨 돌릴 틈이 없더라도 만족하는데 집중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걸 신기해하는 우주를 세탁실로 초대해 빨래를 해결하고, 놀다가 지루해지면 같이 청소기를 돌렸다. 집안 곳곳이 깨끗해지는 모습에 집중하면 나도 덩달아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몰입 훈련이 이제 거의 한 달 가까이 되어간다. 오늘 우주가 낮잠에 든 사이에 요리와 설거지를 하다 문득 마음의 결이 부드러워졌음을 느꼈다. 하기 싫고 귀찮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이미 사라져 있었다. 쉬지 못했지만 너무 괜찮다. 쉬려고 사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쉬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몰입이 자연스러워지면 그때는 제대로 쉬는 것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고 싶다.)
주말이 다가온다. 맛있는 요리와 즐거운 대화 그리고 사랑스러운 우주의 모든 것을 누리며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