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22일
선우 취침 11:30
선우 기상 8:00
우주 기상 8:00
우주 취침 10:15
어제 늦은 오후 행복한 자유시간을 얻고도 풀리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 서방구가 빨래를 갠다고 자러 들어오지 않길래 나도 나갔다가 자꾸 반복적으로 들리는 기계음이 귀에 쟁쟁해서 짜증이 솟구쳤다. 자꾸 짜증내니 서방구가 방으로 들여보냈다. 누워서 바로 기절했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설거지까지 다 정리되어 있었다. 해야 할 일을 재끼고 자는 것까지가 나의 자유였나. 기분이 한결 가벼웠다. 너무 빡빡하게 잘해야 한다는 다짐으로 나를 꽉 채웠나 보다. 틈을 주자.
날이 풀리니 마음도 설레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봄이 오면 우주랑 작은 여행을 자주 다니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오늘 그걸 실행해볼까 했지만 점심, 저녁을 만들 식재료가 없어서 그냥 말고 마트에나 가기로 했다. 어제 안경알을 새로 맞춘 마트 안의 안경점에 먼저 들렀다. 안경테를 조정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아주 딱 맞게 맞춰주셨다. 비용을 여쭤보았는데 어제 왔던 걸 기억해주시고는 그냥 가도 된다고 하셨다. 다음 알도 여기다. 우주가 올해만 벌써 안경을 세 개나 부러뜨려서 몇 달 안에 또 맞추게 될 것 같은데. 무조건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장 보러 들어갔다.
다 떨어진 쌀과 식재료를 사들고 무거운 눈꺼풀을 위해 앤티앤스에서 아메리카노와 오리지널 스틱을 샀다. 지난번에 우주랑 같이 프레즐을 먹었는데 우주도 잘 먹어서 이번에도 사봤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아침시간에 일하시는 분이 사장님인지 스텝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미소가 아침 햇살 같으시다. 하루의 시작에 그 미소를 만난다는 게 참 감사히 여겨진다. 우리를 기억한다는 눈빛도 참 따뜻했다. 그러면 또 가고 싶지. 이틀에 한번 오는 마트에 자꾸 가고 싶은 매장이 두 개나 생겨서 너무 기쁘다. 장 보는 날 모닝커피는 무조건 앤티앤스로 해야지.
집에 돌아와 프레즐을 나눠먹고 우주는 웬일인지 혼자서 사부작사부작 놀았다. 점점 졸린 듯하여 재우려고 했더니 안 잔다길래 나와서 한참 놀다 보니 열두 시가 넘어있었다. 점심을 먹여서 재우려고 후딱 밥도 하고 소고기 볶음도 만들었는데 갑자기 포효하며 달려오더니 어깨에 폭 기대어 안겼다. 그대로 방에 가니 금방 잠들었다. 요리를 안 해도 되는 낮잠시간이라니. 이게 웬 떡인가 싶어 얼른 밥을 먹고 설거지도 후딱 하고 반찬도 하나 더 만들고도 시간이 남아서 방 정리도 했다.
세시 반이 넘어 깬 우주에게 프로틴 쿠키와 우유로 허기만 달래서 넘기고 외출했다가 들어와서 저녁을 줬다. 마지막 어금니 이앓이가 다시 절정인지 요 며칠 통 먹지 않는 우주를 그래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하고 싶다는 대로 뒀다. 응가 타임 후에 목욕시키고 나도 샤워했다. 우주가 다행히 칭얼대지 않고 잘 기다려 줬다. 세수할 때는 비누칠하며 까꿍놀이를 해줬더니 아주 귀엽게 웃어댔다.
우주가 계속 단어를 발음해보려고 시도한다. 오늘은 딸기, 카트, 하트를 말했다. 아, 어, 으, 에 발음을 할 수 있는가 보다. 그리고 줄곧 알 수 없는 말로 떠든다. 그게 너무너무 귀엽다. 뭐라고 말하고 싶긴 한데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되는대로 말하는 걸까?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다. 지난달쯤부터 놀고 싶으면 똑같은 장난감을 하나 더 가져와 내 손에 쥐어주곤 했는데 요즘은 무조건이다. 가장 많이 하는 게 자동차 놀이인데,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거실 곳곳을 돌아다니면 된다. 오늘은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상상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인형놀이를 하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집과 차와 길 같은 것이 실제 있는 것처럼 상상이 되곤 했는데. 우주랑 자동차를 가지고 정글짐을 따라가다 보니 있지도 않은 찻길이 떠올라 옛날 생각이 났나 보다. 내 상상력 아직 죽지 않았어!
서방구의 늦은 귀가에도 불구하고 견딜만한 밤이었고, 우주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잠들었다. 우리는 드디어 우주 방바닥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해 본다. 우주도 우리도 잘 잘 수 있으려나. 모두 굿나잇. 내일도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