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 24일
선우 취침 12:00
선우 기상 7:00
우주 기상 7:15
우주 취침 10:40
코로나 걱정에 가슴이 답답한 밤이다. 서방구의 동료가 확진됐는데 어제 증상이 있었음에도 주변에 알리거나 검사를 진행하지 않고 회의까지 참석해서 서방구가 같이 세 시간 넘게 한 공간에 있었다고 오늘 늦은 오후 연락을 받았다. 회사에서 진행한 자가 키트에서는 음성이 나왔고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와 내내 마스크를 꼈다. 오늘내일 잠도 따로 자기로 했다. 웃으면서 나도 코를 찌르고 우주를 재우고 나와서는 마음을 좀 환기시켜보려고 드라마도 보고 일기장도 펼쳤는데. 드라마가 너무 슬퍼서 속이 더 답답하다. 그래도 궁금해서 계속 켜 두고 있다. 내일이 마지막 회니까.
아무래도 일기장에 쓰는 일기가 최고다. 왜 이걸 미처 몰랐나.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압박에 웹에 바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는데 말이다. 일기는 일기로 써야지. 어제 못썼는데 어제는 정말 느낀 게 많은 하루여서 조금 모자라더라도 같이 기록하고 싶다.
우주는 우주 방 침대에서 우리는 안방 우리 침대에서 모두 무사한 첫날밤을 보냈다. 혹여 혼자 깨서 울까 싶어 긴장되는 맘에 한 시간에 한 번 씩 놀라 깨서 홈캠을 들여다보곤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우리가 방에 없으니 산소가 충분해서 좋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서방구 출근에 나도 같이 깨서 아침시간을 활용했다. 목표는 배춧국과 숙주 무침이었는데 숙주 손질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배춧국은 못 끓였다. 아무렴 어떤가. 올해 들어 이루고 싶었던 목표를 하나 이룬 아침이었다. 우주가 깨기 전에 식사 준비해보기. 이렇게 뿌듯한 일이구나!
요 며칠 패턴이 무너져 우주가 점심을 먹지 않고 낮잠에 들어 3~4시경에 일어난 후 밥을 먹는 게 맘에 걸렸는데, 어제는 그것도 용케 맞추어 점심까지 먹이고 오후에 재웠다. 아침에 미리 음식을 준비해두니 마음이 편했다. 정말이지 일상의 풍요로움을 맘껏 느낄 수 있었다. 분주함이 없어서 그랬겠지. 매일 누리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부지런해야 한다. 일찍 일어난 내가 나에게 낮의 쉼을 허락한다. 그러니 모든 것은 내 손에 달렸다. 누가 대신 만들어 주지 않는다.
우주의 낮잠에 나도 같이 껴서 한 시간 정도 푹 자고 일어나 배춧국도 끓이고 주방을 정리하고도 시간이 남아 책을 읽었다. 알라딘에서 문학코너에 갔다가 그냥 골러본 책인데 문학을 도통 읽지 않아서 다 읽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왜 이런 이야기를 썼는지도 모르겠어서 책에 흥미를 못 붙여 그런지 시간이 나도 책 생각은 안나 며칠 잊은 적도 있다. 3월의 초입에 시작했으니 이번 달 안에는 끝내보자는 요량으로 단숨에 남은 페이지를 읽고서 마지막 역자 서평으로 들어선 순간, 뇌가 번쩍 잠에서 깨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힘들었던 내 맘을 읽었는지 역자는 문학이 왜 읽기 어려운지, 어떤 태도로 읽으면 되는지에 관해 논문처럼 자세히 적어두었다. 마치 이 책의 사용설명서 같았다. 아니, 이걸 먼저 읽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다. 아직 해럴드 블룸의 문학선집 시리즈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부터 비문학 사이에 간간히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알라딘에 또 가서 시리즈의 다른 책을 사 와야겠다. 이번엔 의미 따위 찾으려 하지 말고 완전히 어린아이가 되어 저자가 쓴 문학에 깊이 잠겨봐야겠다.
부지런히 몸을 놀린 하루의 끝도 역시 평화로웠다. 남은 설거지가 적으니 가뿐히 해치울 수 있었고 서방구 저녁도 여유롭게 차려줬다. 밤잠과 낮잠을 차고 넘치게 잤던 우주가 늦게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그것도 여유 있게 받아줄 수 있었다. 오늘도 그런 하루게 되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나는 조금 늦게, 우주는 조금 빨리 깨서 함께 아침을 맞게 되었다. 아무래도 현관에서 나는 소리가 우주 방에 너무 크게 들려 서방구의 출근 시간에 우주가 뒤척이는 일이 잦다. 우리 집 정수기의 물 나오는 부분이 고장 나서 우리의 맥가이버 작은 아빠가 집에 들러주기로 하셨다. 동생 유라도 같이 와서 놀다가기로 했다.
일찍 깬 우주는 그 좋아하는 마트도 안 가겠다고 고개를 세차게 여러 번 젓다가 결국 10시에 낮잠에 들어갔다. 덕분에 찜닭을 요리했고 작은 아빠와 유라가 도착할 즈음 깨서 요리한 찜닭을 함께 먹었다. 유라와 짧은 영감 대화를 나누고 이케아로 향했다. 목적은 우주 책상 고르기. 요즘 가위와 펜에 푹 빠져 내 책상에 앉아 노는 걸 좋아하길래 우주에게 책상을 놓아주기로 했다. 커다란 종이 롤을 끼울 수 있는 높이 조절식 책상이 있었다. 원래 사려던 건 그게 아니었는데 눈썰미 좋은 유라가 그걸 추천해줬고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 마음을 정했다. 마침 차에 실어갈 만한 크기라서 그 길로 바로 업어왔다. 수납함 하나와 우주 턱받이 그리고 지퍼백도.
커피는 유라네 집에 가서 마시기로 했다. 전원주택인 작은 아빠 댁은 갈 때마다 따뜻하다. 마당을 감싸는 나무와 하늘 풍경 그리고 목조식 인테리어 탓이 크기도 할 테지만 그 가족이 가진 따뜻함이 가장 큰 몫일 것이다. 오늘도 가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 우주에게 쏟아지는 사랑 가득한 눈망울에서, 더 맛있는 음식을 챙겨주시려는 마음에서, 관심 어린 질문과 대화 속에서 사랑을 충전했다. 우주는 강아지 코이와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고 내내 피곤했지만 잘 놀다 왔다. 어른들에게 재롱도 부리고 유라존에서 미술놀이도 하고 돌아오는 차에서 순식간에 기절했(지만 집에 올라오다 깼)다.
다시 이 일기의 초입으로 돌아간다. 우주가 피곤한데도 잠을 자려하지 않고 자꾸 짜증만 부리는 통에 코로나 걱정을 잠재울 틈도 없이 급격히 지쳤다. 그러나 일기를 이렇게 몇 바닥 쓰고 나니 진정이 된다. 그래, 나 이렇게 꽉 찬 이틀을 보냈지. 문 꼭 걸어 잠그고 아무도 안 만날 거 아니면 불안해하지도 말자. 걸리면, 이겨내야지. 걱정은 걸리면 그때 하자.
시간이 늦었지만 이틀을 찬찬히 정리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을 내일 또 맞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