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3월 31일

18개월 25일

by 마이문

선우 취침 1:00

선우 기상 7:50

우주 기상 7:50

우주 취침 11:10


늦게 잤으니 늦게 일어났다. 취침과 기상 기록은 분명히 개선을 위한 것이어야 할진대. 개선이 쉽지 않구나. 뭐가 문제니! 체력이 문제다. 일기장에 손으로 일기를 쓰고 싶지만 오늘은 시간이 부족하다. 월요 묵상을 미루고 미뤄 목요일이 되었으니 오늘은 일기를 좀 포기하고서라도 묵상을 먼저 해야 했다. 묵상 메이트 사랑이와 함께한 지 1년이 다 되었다. 출애굽기 1장에서 시작했는데 이제 출애굽이 눈앞에 보인다.


우주는 피곤한지 오늘도 마트에 나가기를 거부했다. 그러면서 또 낮잠은 안 잔다고 했다. 청소기도 돌리지 말라, 잠시 주방에 가면 가지 말라, 요즘엔 본인이 하기 싫은 것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이래라저래라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목요일은 청소기 돌리는 날인데. 덕분에 먼지가 그득하다. 어제 사온 책상 조립을 베이스로 우주와 놀기도 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수납함도 끼워주고 종이 롤도 달아놓고 연필꽂이와 색종이도 놓으니 제법 폼나는 책상이 되었다. 내가 탐이 나서 이사 갈 때는 나도 하나 더 살까 싶다. 우주는 엄청 신나 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놀다가 한 번 씩 들러서 가위질도 하고 도장 놀이도 했다.


낮잠도 안 자고 마트도 안 가는 바람에 먹을 게 없어서 어쩌나 하다가 지난주에 사다 놓은 우동이 생각나서 우주에게 우동 먹겠냐고 하니 도대체 어찌 알아듣고는 쏜살같이 주방으로 달려갔다. 같이 사이좋게 앉아 우동을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면과 국물을 호로록 잘도 받아먹는 우주가 귀여웠다. 우동 먹고 기분이 좋아진 틈을 타서 열심히 꼬셔가지고 현관을 나서는 데 성공했다. 차를 끌고 갈까 씽씽이를 태우고 카트를 챙겨서 가볼까 고민하다가 우주도 좀 움직여야 하고 나도 몸이 찌뿌둥해 걷고 싶어서 후자를 택했다. 험난한 여정이 될 거라는 예상은 하고 나갔다.


아파트 초입에 있는 노출형 엘리베이터를 무지하게 사랑하는 우주를 위해 그쪽 방향으로 노선을 정했다. 바람에 봄 내음이 가득해서 사람이 없을 때는 마스크 밖으로 코를 잠시 내밀어보기도 했다. 아, 봄이다.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보고 있자니 여름도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겨울을 벗어났구나. 겨울에는 다른 계절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봄이 와야 비로소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다시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마음도 생각도 녹아내린 것이다.


무사히 마트에 도착해 마트용 카트에 우주를 태워 장을 보고 2층 알라딘에도 들렀다. 헤럴드 블룸의 문학 선집 두 권을 골라 나오면서 귀여운 스누피가 그려져 있는 갑 티슈 커버도 데려왔다. 그냥 예뻐서 산 건 아니고 주머니가 달려있길래 식탁에 널브러진 비타민 포들을 넣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샀다. 꽤 만족스러운 소비다. 지금도 일기 쓰다 한 번 씩 시선을 주고 있다.


돌아오는 길도 생각보다 수월했다. 카트를 본인이 끌겠다고 씽씽이에서 내렸다가 몇 미터 가더니 안아달라는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 엄마 손이 없어서 안아줄 수가 없다고 설명하니 금방 알아듣고는 다시 씽씽이에 올라탔다. 세상에. 안아줄 수 없다는 말을 받아들이다니. 또 이렇게 한 뼘 컸다. 다시 우주의 최애 엘리베이터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 들어오지 않겠다 하여 대치상황이 이어졌으나 이번엔 그냥 들어 안아 집안에 옮겨 상황을 종료시켰다. 우유와 고기가 얼른 냉장고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우주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손 씻고 방에 누이니 바로 잠이 들었다. 떼가 심해질 때는 졸릴 확률이 크다. 우주랑 같이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환기도 시키고 유 퀴즈를 켜 둔 채로 난장판이 된 거실과 주방을 정리했다. 유 퀴즈는 존재 자체가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기획이 너무 알찬 날은 질투마저 날 때가 있다.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 미역국도 끓이고 나니 우주가 일어났다. 같이 책상에서 놀다가 저녁을 먹었다. 이제는 수저질에 익숙해질 때가 된 것 같아서 자기가 원하면 하도록 둬 보고 있는데, 어제도 된장 샤워를 하더니 오늘은 미역국 샤워를 했다. 그 광경을 하루 새에 또 보다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우주 옷을 벗겨놓고 손발부터 씻기고 식탁과 바닥과 의자를 정리했다. 잘게 잘린 미역이 끝없이 나왔다. 온 집안에 미역국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아니, 아기는 그래야만 하지. 지금 아니면 언제 국을 엎는 희열을 느낄 수 있겠나. 치우는 건 백 번이고 할 수 있다. 어차피 백 번 치우기도 전에 우주가 커버릴 거다. 그렇게 정리해보자.


18개월 아기와의 24시간은 체력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드는 일이다. 마음이라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귀가 자꾸만 먹먹해지고 졸음이 쏟아진다. 비타민C 2000 한 포를 더 때려 넣었다. 내일은 금요일이다! 이렇게 또 한 주를 차곡차곡 채웠다. 이제 꿀잠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