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저 그거 안좋아해요."
인간에게는 세가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성욕, 수면욕, 식욕. 과연 세 개 뿐일까? 감히 하나 더 추가하자고 한다면 나는 '애정욕'을 넣어보고 싶다. 우리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다. 그리고 이 욕구는 갓 결혼한 며느리에게 더욱 미친듯이 일어나는 듯 하다.
"어머니, 제가 할게요."
결혼하기 전, 처음으로 인사 드리러 간 그 날부터 나에게 이 욕구는 마치 아기가 엄마의 젖을 격하게 탐하듯 애절했다. 잘보이고 싶었고, 금쪽같은 막내아들에게 하나도 부족함 없는 예비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었다(신랑은 어려서 심장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죽다 살아났기에 금쪽같다고 표현한 것이지, 3대 독자 뭐 그런 것은 아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어머니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반응했다. 전라도 분이라 말투는 투박해도 정 많고 사랑 많으신 우리 어머니는 내리 손을 휘저으며
"앉아있어, 괜찮아."
라고 하셨지만 이미 사랑받고 싶다는 애정욕에 활활 타오른 내 엉덩이는 쉴새 없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나는 뻗어버렸다. 설거지를 한 것도 아니고 밥을 차린 것도 아닌데 몹시 피곤했고 괜히 서러웠다.
'오빠는 우리집에 오면 앉아만 있던데, 나는 왜....'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에서 다녀온 후로 나의 애정욕은 더욱 활활 타올랐다. 활화산마냥 불타오르는 나의 애정욕은 시댁으로 출동할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시댁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마다 꺄르르 꺄르르 웃어대며 방청객 모드로 온 몸을 집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님 아버님이 나를 '어디, 좀 문제가 있나.'싶어하지 않으신 것이 더 신기할 정도이다.
시댁에 가면 대부분 식사를 하는데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집이 좁다며 가족모임은 주로 외식하던 시댁이었기에 딱히 밥을 차리고 식사가 끝날 때 즘 눈치껏 일어나서 종종 걸음으로 나가 과일을 깎아 와야 한다거나, 모두들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꺄르르 꺄르르 웃을 때 혼자서 싱크대에 서 설거지를 해야한다는 둥의 귀로 들은 시월드 라이프는 사실 나에게는 먼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 모임에서 조금 힘들었던 점은 '음식'이었다.
편식까진 아니어도 입도 짧고, 밥 한그릇 비워본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로 식사량이 적은 나에게 시댁 어른들 앞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생전 먹어본 적 없는 콩밥을 꾸역꾸역 삼켜야 했고, 어머니가 맛있으시다며 내 밥 그릇 앞으로 밀어주신 반찬들은 집이었다면 몸서리 치며 식탁 끝으로 보냈을 반찬들이었지만 '와아- 맛있겠다'라는 기계적 반응으로 그릇을 비웠다. 밥 한 그릇을 다 먹는다는 것은 내게 너무나도 괴로운 곤욕이었지만 밥투정하는 못난 며느리로 보일까봐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숟가락도 크게 떠서 한 입 가득 넣고 탐복스럽게 먹는 연기를 펼쳐야 했다. 어른들께 사랑받고 싶다고 난리가 난 나의 애정욕은 시댁 모임을 향할 때 마다 나를 '예쁜 며느리' 연기자로 강제 노동 시켰다.
나에게 그렇게 해야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님 아버님도 사실 밥 잘먹는다고 나를 예쁘다 해주신 적도 없었다. 뭘해야 할지 몰라 그냥 남들이 그렇게 한다고 하니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랑받고 싶었다. 예쁘고 착한 며느리로 보이고 싶었다. 나는 애달팠고 그래서 피곤했고 점점 시댁모임이 힘들게만 느껴졌다.
"태어난 가족은 아니지만, 평생 봐야 할 가족인데. 너다운게 낫지 않아?"
푸념을 쏟아내는 나에게 유부녀 친구가 말했다. 네가 시댁에 적응하듯 시댁 부모님도 너에게 적응하고 계실 거라고. 우리 아들이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는 누구일까, 저 아이는 무얼 좋아할까, 어떻게해야 저 아이가 좋아할까. 너만큼이나 시댁 부모님도 네가 궁금하고 어떻게보면 어려울 수도 있다고. 그런데 앞으로 함께 할 제 2의 가족이니까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그냥 너 답게 굴라고. 빨간색으로 손톱을 다 칠하는 네일을 좋아하면 그렇게 하고 가라고. 어머니, 저는 손톱을 다 빨갛게 칠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냥 너 답게. 착한 며느리 코스튬은 갖다 버리고, 가족인데. 너 답게.
아 한 방을 맞은 기분이었다. 나 답게. 어쩌면 몇 달 동안의 나란 며느리는 가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 더이상 애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애쓰지 않겠다. 더이상.
"어머니, 저 그거 안좋아해요."
애쓰지 않겠다 다짐하고 처음으로 가족모임에 간 날. 내 입에서는 '감히 어디 며느리 주제에' 싸다귀 맞을 법한 소리가 나왔다. 물론 정중하게. 하지만 나는 계속 콩이 들어간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 저 콩 안좋아해요."
"그러냐? 콩이 얼마나 맛있는디, 여기 쌀밥 줄게."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 고마우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나에게 콩이 없는 밥을 주시면서 타박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발가락 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나를 지배하던 애정욕은 내게 미쳤냐며 감히 그런 소리를 해서 미움을 사면 어쩌려고 그러냐고 발악발악 소리를 질러대는 와중에 어머니는 내게 타박 한마디 안하시고 콩이 없는 밥을 떠주셨다. 어디서 난 용기였을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 밥이 너무 많아요. 저 조금만 덜어주세요."
사랑 많으신 우리 어머니가 떠주신 밥은 내게는 거의 조선시대 양반이 마주했다던 대야에 담긴 밥 공기 수준이었다. 또 꾸역 꾸역 다 먹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 콩도 빼주신 김에 밥도 좀 덜어주세요, 제발....
"그러냐? 부족하면 더 먹어라."
어머니는 시원하게 밥공기를 가져가서 반을 뚝 덜은 다음 다시 주셨다. 나는 그날 두번을 물려서 받은 황송한 반공기의 밥을 맛있게 먹었다. 배는 불렀지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한 숟가락 더 떠다가 먹기까지 했다. 마음이 편했고 무엇보다 감사했다. 밥을 다 먹느라 애쓰지 않아도 됐고, 콩밥을 싫어해도 밥 한공기를 다 먹지 않아도 어머니가 나를 미워하진 않으시는 것 같아서 내심 다행스러웠다.
그후로 나의 애쓰지 않기 노력은 계속 되었다.
"어머니, 그거 조금만 주세요. 다 못먹어요."
집에 챙겨가라며 반찬을 싸주시는 어머니께 양을 덜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어머니, 저 배불러요. 그만 먹을래요."
식당에서 먹다 남은 반찬을 다 비우자며 건네주시는 어머니께 정중히 사양하기도 했다. 음식이 귀했던 시절을 보내신 어른 분들이기에 쌀 한 톨, 나물 반찬 하나 모두 아쉽고 아까우셨을 것을 잘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나답지 못하고 계속 애쓰다가는 아무도 머라 하지 않았는데 괜히 시댁이 불편하고 어렵기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의사를 전하기 시작했고 애쓰지 않기로 하였다.
효과는? 세상이 변했다. 시댁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부터가 가볍다. 가서 애쓰지 않아도 되기에, 그냥 원래의 내 모습대로 시댁에 가서 보고싶던 어머님 아버님 만나 즐겁게 대화하고 먹고싶은 양만큼 먹고싶은 반찬만 맛있게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기에. 처음보다 적응이 되서이기도 한 것 같지만 애쓰지 않기로 한 후로 신기하게 나에 대한 시부모님의 애정이 더 와닿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내가 애쓰지 않고 그냥 내 모습 그대로 보여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반겨주고 예뻐해주시기에
'아, 내가 진짜 사랑을 받는구나'
실감해서였을까. 사랑 많으신 우리 어머님, 아버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괜히 어머님, 아버님을 생각하니 코가 찡해진다. 많이 부족하고 까다로운 이런 며느리도 사랑으로 품어주시니, 한없이 감사하고 죄송할 뿐이다.
애쓰지 말자.
어차피 평생 가야하는 것,
그냥 나 답게.
그냥 당신 답게.
며느리 역시 내 삶이니까. 내게는 즐거운 #며느라기 가 되기를.
당신에게도 즐거운 #며느라기 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