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활다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Lu Oct 06. 2018

고양이를 입양하기로했다

테리와의 이별, 그리고 테오와의 만남

테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지 3개월이 되었다.


뜻밖의 손님으로 찾아와, 우리 가족이 되기로 한지 한달이 되던 날,

테리는 선천성으로 갖고 있던 횡경막 허니아 수술을 받았고, 수술을 받던 중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아침 일찍, 테리를 병원에 맡기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추스리려 출근했건만,

수술이 끝난 테리를 어서 보고 싶어 서둘었던 퇴근길에 걸려온 의사 선생님의 전화는

기대하였던 소식이 아니었다.


나와 신랑은 처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리며 테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었다.


테리를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지만 사실 함께 살 자신은 없었다.

혹여나 알레르기가 심해지면 어떡하지, 한평생 한 생명을 우리가 지켜줄 수 있을까.

제법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부부가 고양이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하지만 테리를 만나 우리는 제법 고양이에게 좋은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을 수 있었고, 

테리를 보내고 나서 원래 둘 뿐이던 작지만 따뜻하고 아늑했던 우리 집은

테리의 부재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고독한 낯선 집이 되어버렸다.


사실 테리를 만나기 전까지, 고양이만 보면 너무 예쁘다 생각했지

세상에 이렇게 가족을 필요로 하는 유기묘 또는 길고양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테리에게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이라도 갚고자 하는 마음으로

카라와 같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를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구조된 고양이들의 소식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우리 고양이를 입양할까?"


아주 넓은 집도 아니고, 둘 다 직장인이다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길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매일 깨끗한 물을 주고, 좋은 사료를 챙겨주고,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수는 있잖아. 우리라도 괜찮다면 누군가에게 삶의 기회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테오.


테오는 '나비야 사랑해'라는 고양이 보호 단체에서 입양하게 되었다. 

테오는 공사장에서 다른 형제들과 함께 인부들에게 발견된 고양이였다. 아직 2개월이 넘지 않은 아기 고양이들을 발견한 인부들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공사를 중단하고 이틀동안 엄마 고양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끝끝내 엄마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계속 공사를 중단할 수 없었던 인부들은 고양이를 병원으로 보내게 되었고, 테오를 포함한 형제들은 '나비야 사랑해'를 통해 최종적으로 구조되게 되었다. 


테오는 하얀색 털에 크림색 얼룩 무늬를 갖은 오드아이 코숏이다. 오드아이는 양 쪽의 눈 색깔이 달라 매우 흔하지 않고, 분양가도 높은 편이며, 코숏이지만 예쁘다는 생각에 입양율도 높다고 알려져있다. 테오를 구조한 봉사자님들 역시 테오는 아주 빨리 입양을 갈것이라 예상했고, 예상에 맞게 테오에 대한 입양 문의는 아주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인연이 닿지 못했던 것일까. 테오를 입양하기 위해 임보자 집으로 찾아왔던 입양 신청자분들은 이러 저러한 사연으로 입양이 진행되지 못했고, 그렇게 테오는 황금 입양시기를 놓치고 6개월로 접어들어 제법 덩치도 커지고 아깽이 티도 벗어나고 있었다. 


사실 우리 부부는 테오를 입양할 생각이 없었다. '나비야 사랑해'의 입양 공고 소식들을 보며 입양이 잘 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많을 것 같은 아이보다는 다 큰 성묘처럼 입양 신청이 적어서 가족을 더욱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테오와 마찬가지로 크림색 무늬를 가진 테오의 형제도 계속 입양이 진행되지 못해 임보처에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사실 테오의 형제, 산책이를 입양하기로 하였고 길고 긴 입양 신청서를 작성하고 우리를 좋게 봐주신 단체 덕분에 테오의 형제, 산책이를 보러 임보자 집이 있던 인천으로 향할 수 있었다.


고양이를 만난 집사들은 흔히 말한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우리를 선택했다고. 고양이와 집사의 관계를 고려해 흔히 '간택'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테오의 형제, 산책이를 만나러 간 날, 우리는 테오에게 간택당해버렸다.


입양 신청한 고양이가 산책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임보자님과 산책이의 건강과 성격,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당시 '마실이'라는 이름으로 임보자집에서 산책이와 함께 살고 있었던 테오가 유독 신랑에게 관심을 보였다. 자꾸 신랑 주변을 서성이며 신랑의 손도 만져보고, 신랑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기까지. 


되려 산책이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었다. 


'응, 왔어? 놀다가~'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신랑에게 관심을 보이며 신랑 옆에 눕기까지 하는 테오를 보고 임보자님도 무척 신기해하며, 아이가 워낙 낯을 가려서, 사실 입양 신청하고 테오를 보러 오신 분들이 있으면 방에도 들어오지 않아 얼굴 보기 힘들었다고 하셨다. 


"얘가 낯을 가린다고요...?"


이미 신랑 옆에 발라당 누워서 신랑 손을 쪼물닥 거리는 테오가 낯을 가린다고 하니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임보자님이 아이를 착각하셨나 싶을 정도였다. 


"얘가 우리를 좋아하나봐..."


결국 테오에게 마음을 홀딱 빼앗긴 신랑이 구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테오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자기가 선택한 것이 맞고 후회는 없다는 듯이, 처음 우리집에 온 날, 낯설고 무서울 것이 분명한데 쫄랑쫄랑 집을 구석구석 탐색하고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우리 옆으로 달려와서 폭 안겨 골골대기 시작했다. 



6개월이었던 테오는, 우리집에 와서 이제 8개월로 접어들며 제법 성묘 티가 나기 시작했다. 

사춘기 시즌이라 땡깡과 짜증이 조금 많기는 하지만, 매일 아침이면 나와 신랑 사이에서 누군가의 팔을 독차지하고 배를 발라당 보인 채 누워 자는 사랑스러운 우리 고양이. 



입양이라는 것이 이렇게 놀라운 경험일 줄은 몰랐다.


우리가 가족이 필요한 고양이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테오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행복과 기쁨을 선물해주고 있다. 여러 종이 교배하며 자연의 생리를 자연스럽게 따라온 품종이다보니, 유전병과 같은 질병도 없고 되려 고양이 중에서도 성격이 좋고 건강한 종이 바로 코숏이라고 한다.


나는 우리가 너를 찾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너가 우리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싶다. 


매일 네 얼굴 구석 구석을 손으로 쓰담으며 말한다. 


"테오야, 태어나줘서 고맙고 오래오래 건강해줘."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뜻밖의 손님을 받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