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친구집에 가서 보았던 비디오플레이어, 그것이 어린 시절 나에겐 가장 큰 결핍이었다. 나의 학창 시절엔 늘상 친구집에 가서 놀았던 기억뿐, 우리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다.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친구집에 가면 우리 집에서 나는 된장냄새가 아닌 촉촉한 오므라이스 냄새가 났다. 찬장 한쪽에는 늘 새로이 채워져 있던 간식과 라면이 있었고, 잘 보이는 벽에는 타지에서 일하시는 아빠가 주말에 엄마를 위해 사 오신다는 꽃다발이 물구나무서서 곱게 말라가고 있었다. 친구의 방은 가지런했고 따스한 햇빛이 들어왔으며 나란히 붙어있는 책상과 침대는 소재와 색이 같았다.
우린 놀다 지루해지면 tv 앞 소파에 앉았다. 비디오 플레이어의 세모모양 버튼을 누르면 영화가 재생되었다. tv를 통해 주말드라마만 보던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볼 수 있단 사실에 놀라웠고, 영화 속의 삶은 드라마에 나오는 삶과는 확연히 다른 세계였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난 그 세계가 이질적이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동경의 대상으로 싹이 트곤 했다. 나는 염치없게도 친구집에서 모든 것을 내 것인 양 즐겼었다. 어쩌면 나는 영화 속에 나오는 부잣집 딸의 모습이 이런 건가 싶어 잠시 그 삶을 살아보는 것도 같았다.
난 우리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짜리 맨션의 5층집이었고 식구가 많아 나 혼자 쓸 내 방 또한 없었다. 요를 깔고 이불을 덮으면 그곳이 내가 누워 잠잘 자리였다. 100원을 들고 문방구에 가서 쫀득이, 문어발 따위를 사 먹는 것이 간식의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디오플레이어가 우리 집엔 없었다. 친구들을 다른 세계로 초대할 매개체가 우리 집엔 없었다. 어린 나는 비디오플레이어가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모르길 바랐다. 부모님은 늘 아끼셨고 굳이 불필요한 건 집에 들여놓으시지 않았으며 집을 꾸미는 미적추구는 먹고사는데 응당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본인보다 주변을 더 잘 챙기던 대학선배가 있었다. 언니는 함께 있을 때 불편한 게 무엇인지 살피고 본인 주머니 속 뭐든 내어주기 바빴다. 나는 장난스레 “마더 테레사야?”라고 묻곤 했다.
하루는 언니집엘 가게 되었는데, 집으로 들어가는 길도 고르지 못한 골목 구석의 양옥집 2층 단칸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볕이 들어오는지도 모를 어두운 집이었고, 켜켜이 쌓인 많은 세간살이 속에 앉을자리를 내어주었다. 아침에 먹고 남은듯한 짜게 식은 김치찌개를 따뜻하게 데워 상을 차려주었다. 김치찌개를 한 술 뜨는데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시절 난 뭐가 그렇게 두려워 나를 숨기고 포장해 댔는지 늘 동동거리던 당시의 어린 내가 참으로 가여웠다.
그날 언니의 집에 비디오플레이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른다. 설령 없었다 하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언니가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난 이미 그간 겪었던 언니의 고운 심성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