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라는 묘약

나의 첫 해루질

by mainKim

암막커튼이 미처 닿지 못하는 틈새로 따사로운 볕이 먼저 방 안을 침범해 버리는 아침은 이변 없이 해가 반짝 뜨는 날이다. 하지만 오늘은 ‘해님’의 기세가 영 신통치 않는지 어둑한 침실에서 시작된 아침이 평소보다 늦어졌다. 지난밤 “내일 바다 가서 진짜 재밌게 놀자아-”를 연발하며 기대감에 부풀어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가 아직도 쌔근쌔근, 조용한 방에 고르게 퍼진다. 갯벌체험 가자는 말에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아이들의 엉덩이 춤이 떠올라 서둘러 비옷을 찾아 가방에 욱여넣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나의 몸상태만큼이나 잔뜩 구겨져있다. 카페인이 맞지 않아 커피 한 잔을 다 못 마시는 내가 어제는 달짝지근한 아인슈페너의 매력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홀짝홀짝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던 커피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니 그때부터 심장이 두근 대기 시작했다. 역시나 밤에는 잠을 이루기 힘들었고, 커피 한 잔을 모조리 마셔버린 어제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게다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대자연의 날이기도 했다.


바다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토독토독 눌러쓴 모자 끝을 건든다. 내리는 비에다 짠 바다바람까지 몸을 감싸니 더욱 춥고 온몸이 욱신거린다. 나머지 가족들을 바다에 내보내고 차에서 시트를 뜨겁게 켜고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음만은 비장하게 바다를 향해 걷는다. 왼손엔 양파망과 오른손엔 갈고리를 들고서.


갈고리를 든 손에 힘을 주어 땅에 꽂았다. 그대로 긁어 올려보니 거무튀튀한 뻘 속에 동그랗고 말간 동죽들이 쏙쏙 박혀 따라 올라온다. 한 번 더 힘을 주어 깊게 파 올리면 그 속에서 조용히 몸집을 키우고 있던 것들도 제법 따라온다. 이게 손 맛인 건가. 낚시꾼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손맛’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작은 양파망이 순식간에 가득 차서 더는 못 버티고 하나 둘 뱉어낸다. 그러면 바다 위의 전사마냥 알 수 없는 주문을 외며 영웅놀이에 빠져있는 첫째 아이의 빈 양파망을 내 앞에 갖다 놓는다. 그리고 뻘로 파고드는 동죽의 꽁무니를 잡아다 망 속으로 던져 넣는다.


가족들에게 해 먹일 수 있는 갖가지 요리를 생각하며 금세 마음은 부자가 된다. 아마 쪼그려 앉은 내 등위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을지도.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와 거세진 바람도 나의 숨은 열정을 막지 못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그래, 그래 가자.“ 하면서도 몸을 일으켜 세울 생각을 안 하니, 점점 아이들도 말끝에 ”제발“이 붙는다. 밭일하시는 부모님께 집에 가자고 떼를 써도 “다했다”란 말만 허공에 흩뿌려질 뿐, 꿈쩍안하던 부모님의 무거웠던 엉덩이가 지금의 나의 그것과 비슷한 무게이지 않았을까.


작은 망을 꽉꽉 채운 후에야 일어나 내내 등지고 앉았던 방향으로 몸을 튼다. 그제서야 비에 젖은 내 옷과, 바람에 나부껴 펄럭대는 아이들의 비옷이 보인다. 이내 찬 바람이 젖은 내 옷을 통과해 뼛속까지 때리며 몸이 달달 떨린다. 동죽 캐는 재미에 까맣게 잊혀졌던 컨디션이 바닥을 향해 다시 곤두박질친다. 역시 내가 좋아서 즐기며 하는 일 앞에선 시름도 잊혀지는구나, 몸소 깨닫는다. 돌아가면 뜨끈한 전기장판위에 꼼짝않고 누워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올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향하는 내 마음은 양껏 풍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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