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의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은 끝이 보이질 않았고,
아이의 여름 방학은 매일 아침 회사에 가는 아빠, 엄마와 유치원에 등원하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며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는 아이가 불쑥 캠핑하러 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텐트도 구비해놓지 않은 우리 집에 난데없이 캠핑이라니..?
워낙 평소에 욕구가 크게 없는 아이라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가 없음 잇몸으로, 나는 급히 근교의 카라반을 예약했다.
나에게 있어 캠핑은
익숙한 잠자리를 덩그러니 비워 두고
굳이 좁은 공간에서 몸을 접어 자야 하는 것,
집에서 편히 먹을 수 있는 끼니를 애써 바깥으로 옮겨가야 하는 것,
숯불의 낭만인 건지 까맣게 그을린 고기도 허허 웃으며 입안에 넣을 수 있는 무던한 마음가짐,
살면서 초면인 각종 벌레들과의 사투.
먹는 것, 씻는 것, 볼 일을 보는 것조차 온통 불편함으로 집약된 ‘사서 하는 고생’이었다.
아이의 “캠핑가요” 한마디에 여러 불편함을 제쳐두고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 내 모습도 이젠 익숙해졌다.
수많은 불편함도 아이를 향한 짝사랑에 잊혀지고마는,
엄마의 마음이 이러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아침부터 신나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도착한 캠핑장에선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식기를 씻어 뜨거운 물에 소독을 하고, 선반이든 바닥이든 구석구석 닦았다.
야외에 있는 나무로 된 테이블도 물티슈로 쓱쓱 닦았다.
군데군데 나뭇결이 일어나 물티슈에 있는 섬유조직이 그 끝에 나풀나풀 걸렸다.
빠르게 힘주어 닦던 그 순간, 짧은 비명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물티슈를 집어던졌다.
손톱 밑에 굵은 가시가 박혀 신경을 소름 돋게 건들고 있었다.
작디작은 가시가 온 신경을 자극하니 굳이 캠핑을 왜 왔을까 하는 후회가 앞섰다.
자꾸만 신경이 쓰여 당장 빼버리고 싶은 마음에 자꾸 눌러 쥐어짰지만 더 깊숙이 박히는 것 같아 그것도 멈추었다.
2층침대에서 신나게 베개싸움을 하는 아이들 앞에서,
엄지를 날리며 구운 고기를 호호 불어 먹는 아이들 앞에서,
의자를 가져다 물가에 앉아 감상하는 아이들 앞에서 불편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걱정이 더 많은 큰 아이의 깊은 성정을 알기에 더욱 그럴 수 없었다.
욱신거리는 손가락에 온신경이 집중되었지만 애써 접어두고, 내 눈길은 아이들을 향했다.
십수 년 전 지금처럼 더웠던 여름날,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니 기쁜 마음에 시장에서 제일 큰 닭을 사다가
압력솥에 삶는다고 바삐 움직이다 팔 한쪽에 크게 화상을 입은 친정엄마의 기억이 스쳤다.
당시 괜찮다고만 했던 엄마의 한쪽 팔엔 아직도 거뭇거뭇한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본인을 돌보지 못하는 엄마가 답답했다.
그날 엄마의 쓰라린 아픔은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가족들의 모습에 치유가 되었을까.
엄마라는 자리는 본인 아픔은 차치하고,
가족에게 늘 온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그날의 내 손톱밑 가시 같은 거였다.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나를 위해서 살자 다짐했던 나는
그렇게 내 엄마를 닮은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