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

행복은 늘 주변에 있었다

by mainKim

1.

드디어 밤산책을 나설 수 있는 계절이 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에 윤활유를 뿌려주듯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때. 푹푹 찌는 더위에 모기를 이끌고 돌아올 기세등등한 여름이 오기 전까지 여유롭게 밤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인 것이다. 이 시기는 유난히 짧기에 더욱 애틋하다.


2.

남편과 나는 모처럼 이른 퇴근을 했고, 큰아이는 서둘러 숙제를 끝냈다. 그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어느새 봄을 뽐내고 있었다. 삼박자가 장단에 맞춰 딱 떨어진 날, <나가자>라는 말과 동시에 아이들은 각자가 선호하는 바퀴 달린 것들을 끌고 집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3.

동네를 돌며 아이들은 본인들만 아는 장소와 그곳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우리에게 앞다투어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발은 바퀴를 끌고 가느라 분주했고, 입은 침을 튀기며 얘길 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으며, 눈은 흥미로워하는 우리의 표정을 살피느라 바빴다. 아이들이 집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 쌓아놓은 다른 세계를 마주하니 금세 커버린 모습에 대견스럽다가 또 금세 커버릴까 아쉬웠다.


4.

이제는 길가에 핀 꽃들에도 시선이 멈춘다. 벚꽃이 가로등에 비춰 마치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듯한 자태가 아름답다. 내 인생에서도 꽃처럼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그땐 사방천지에 꽃이 피어있어도 예쁜 줄을 몰랐고 지는 줄도 몰랐다. 그 시절을 지나와보니 이젠 피어있는 꽃들을 무심코 지나치지 못한다. 싱그러운 꽃 같았던 그 시절이 그리운 마음 절반, 이내 져버려 땅에서 밟힐 꽃잎들이 가련한 마음 절반이다. 그래선지 쉬이 눈길이 거두어지지 않는다.


5.

청량한 밤공기를 마시며 남편과 나란히 걷고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금방 져버릴 꽃들의 아름다움과 향기도 원 없이 만끽했다. 아이들과 누가 먼저 치킨집에 도착하나 달리기 시합도 했다. 짭조름한 치킨에 생맥주 한 모금을 들이켜니 뛰느라 가쁘게 내쉰 숨에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의 잘 먹는 모습에 남편과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마른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오늘 우리는 또 이렇게 많은 날 중의 하루를 소소한 행복으로 낚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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