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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노래 Oct 21. 2020

아버지와 기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유품을 정리하면서 낡은 아버지의 기타를 잠시 밖에 내어 두었다. 쓸일이 없을 테니 버리는게 낫겠지. 아버지의 기타를 바라보면 내가 못견딜 것만 같아 눈앞에서 없애야만 했다. 그래도, 며칠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가슴 가득 이 기타를 품고 계셨을 텐데.. 생각이 미처 다시 기타를 가지러 나갔다. 기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5분도 채 되지 않은 그 짧은 순간에 누군가 기타를 들고 가버린 것이다. 거짓말 같이 아버지의 기타는 그렇게 나의 무심함으로 인해 영영 내곁을 떠나버렸다. 꼭 아버지처럼.

어릴적 누운 머리맡에서 기타를 튕기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하다. 중년의 어머니의 눈에는 청승이었을 그 모습이 처녀적 어머니의 눈에는 낭만이었겠지. 머리맡에서 울리는 기타소리에 눈을 감으면 낙엽이 흩어 뿌려지는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꿈과 모험이 가득한 동요를 들을 무렵 나는 아버지의 기타와 나훈아의 사랑을 들었다. 아버지가 듣고 연주하는 음악속에는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난 꿈과 모험보다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사는 것이 힘겨워 기타를 끌어 안아 시름을 잊어보려했던 아버지는 쓸쓸했을 것이다. 끈적한 삶은 기타 몇 줄로 쉽게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텐데 아버지의 기타는 때론 처연한 소리를 냈고, 아버지의 손가락 하나에 음표가 하나씩 걸려있는듯 한땀한땀 소리를 담아냈다. 기타를 연주하며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셨고 간혹 노래를 부를 때 나오는 소리는 듣기에 탁했다. 허스키하진 않지만 청량하지 않은 소리. 'Wonderful Tonight'를 부르시던 목소리는 에릭크립튼과 닮았던 것 같다. 젊었을적 가수를 지망하셨다는 말은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아버지에게 기타는 한때 삶 자체였을 것이다. 그 안에 밥이 있고, 그안에 꿈이 있고, 그 안에 생계가 있었다. 가냘픈 5줄의 현으로 무거운 삶을 감당하려 하셨을 것이다. 팽팽한 기타줄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절묘한 경계선에서 힘겹게 소리를 내었다. 기타를 안고 둥글게 굽은 아버지의 등 너머에는 어린 자식과 너무 일찍 결혼한 아내가 있었다. 하나의 낡은 기타에 의지해 그들이 헤쳐가기에 세상은 가혹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 아버지는 기타를 놓으셨다.

그리고 20여년이 지난 후에 다시 기타를 잡으신건 무슨 심경에서 였을까. 작곡을 하시기 위해 사촌 동생에게 종이를 받아 가셨다는 아버지의 창작곡 유작은 남아있지 않다. 연필 자국만 남은 공책 빈 페이지에 엷게 연필도 칠해 빛에 비춰도 보았다. 혹시나 흔적이 남았을까 싶어.

눈깜짝할새 아버지의 기타를 잃고, 어찌할바를 몰랐다. 내가 왜그랬을까. 돌이키기엔 덧없는 내 눈앞에 놓인 것은 아버지의 손으로 적은 악보집 뿐이었다. 집에 굴러다니던 얇고 노란 초등학생용 노트에 빼곡히 들어앉은 암호와도 같은 음표와 코드들. 아버지의 익숙한 필체만이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전부였다. '저 악보를 따라서 내가 연주해보고 싶다. 연주해야겠다' 저 검정색 음표를 따라가다보면 아버지를, 아버지의 기타를 다시 찾을 수 있을것만 같았다. 아버지의 굽은 등을 잊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지친 필체를 따라 소리를 내기 위해 나는 주머니를 털어 기타를 마련했고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필체를 따라 처음 더듬거리며 이 곡을 연주하면서,
나는 하염 없었다.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바람결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이제와 생각하면 당신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찾아와
사랑은 기쁨보다 아픔인 것을
나에게 심어주었죠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돌아서 눈감으면 잊을까
정든 님 떠나가면 어이해
발길에 부딪히는 사랑의 추억
두 눈에 맺혀지는 눈물이여



김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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