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의 현을 활이 밀고 지나갈 때 진동하는 음파는 딱 그 굴곡만큼 사람에게 파고든다.
신음하는 듯한 저음은 높은 밀도로 혈관을 비집고 들어온다. 음파에도 삼투압이 작용되는가,
혈액 보다 밀도 높은 소리는 보다 밀도가 낮은 마음곳으로 빨려 올라간다.
목소리는 두 개의 손가락 같이 생긴 성대의 근육을 붙이고 떼어가며 수고롭게 떨려 울리는 소리의 배열이다.
아랫배를 타고 올라와 목인지 코인지 모를 어딘가를 통해 나오는 소리는 감동이라는 목적을 향해 차분하게 허공을 가른다.
온몸의 에너지를 태워 오로지 성대를 지나 외롭게 밀려 나온다.
서른 둘에 스스로의 마지막 날을 정한 김광석의 목소리는 서른 다섯의 나를 사로잡는다. 육십의 나도 여전히 사로잡을 것이다.
군복무시절 늘 김광석의 노래를 끼고 듣던 후배 창우에게 청승을 떤다고 나무란 일이 있었다.
스무살의 나는 김광석을 알지 못하였다. 김광석의 성대를 알지 못하였고, 김광석의 울림을 알지 못하였으며,
그의 손끝에 걸린 기타소리를 알지 못하였다. 노래로 세상과 싸우고 세상에 선물을 흩뿌린 김광석의 밀도를 알지 못하였다.
그의 사랑과 아픔과 외로움을 알지 못하였다.
김광석을 알기에 내 스물의 감수성은 너무 헐거웠다. 밀도높은 김광석은 그 헐거운 내 감수성에 닿지 못하고 그물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의 목소리는 질감이 확실하지만 정의내리기 어려운 광의성을 지녔다.
포근한듯 차가우며 물렁거리듯 단단하다. 부드러운듯 거칠며, 겸손하지만 강하다.
그런 소리로 그는 부르지 않고 읊조린다. 가사를 타이핑하지 않고 적는다. 회갈색 갱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적어 담는다.
지워내도 자욱이 남을 만큼 그렇게 가슴에 담는다.
김광석을 알기 전까지 음악은 무엇인가를 하면서 듣는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노래를 들을 땐 온전히 그와 대화를 해야한다. 다른 행위와 생각이 그 사이를 침범할 수 없다. 그래야만 그를 들을 수 있다.
오롯이 앉아 김광석을 들으면 홀연히 하늘을 날기도 하고, 사무치듯 땅끝까지 가라앉았다가, 불의에 항거하듯 주먹을 불끈쥐기도 하며,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조용한 집안에서,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아서,
김광석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일생을 두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
감사할 수록 애석함이 드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