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승차(三步乘車), 일그램여사(1g 女史)"
내가 지어준 아내 애칭이다. 어디를 가든 하나, 둘, 셋 걸음후 차에 승차하고, 1그램도 들기도 버거워하는 과장된 별명이긴 하지만 아내의 치명적 매력이다. 나와 딸아이를 동반하지 않는 아내는 촘촘하고, 영리하며, 완벽한 듯 보이는 자신의 울타리 안에 우리가 출몰할 때만 나타나는 실수투성이 괴물을 기르고 있다. 나는 아내가 마이크를 잡고 2시간 정도는 청중을 휘어잡는 말솜씨보다 이 작고 어수룩한 요괴가 언제부터 아내의 울타리 안에 자리잡게 되었나 하는 것이 더 궁금하다.
3주 전 그날도 공들여 손질한 머리유지를 위해 서울 강남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오는 길은 버스를 타고 오겠다고 호기롭게 장담을 했다. 직진본능 길치 50년, 나는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지만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강남에서 친구 모임을 마치고 집까지 오는 길, 수원 광교까지는 버스를 타고 무사히 왔다. 갤러리아 앞에서 갈팡질팡 혼돈으로 집까지 어디서 갈아타야 할지 막막했다. 왜 그리 버스정류장은 많은지. 길치들의 직진 본능으로 내리자마자 무작정 떠나는 차를 타고 어딘지 모를 곳에 내리고, 갈아타고를 반복했다. 광교부터 인계동까지 20여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집시여인처럼 활개치고 2시간 넘게 돌아다녔다. 방향을 잃어버리고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흐느꼈고, 결국은 딸아이가 카카오톡의 위치공유로 "오른쪽으로 계속 걸어가. 조그만 더.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다시 걸어가. 내가 얘기할 때까지 계속 가면 돼... 큰길 보이지. 거기까지 걸어가. 왼쪽을 봐. 버스정류장 보이지? 거기 서있어. 56-1번 버스가 5분 후에 도착할 거야. 그럼 그거 타... 지금 오는 버스 타야 돼. 지금부터 8 정거장 서면 내리는 거야. 이젠 전화 끊을게. 걱정하지 마. 내가 위치 보고 있으니까. 내리기는 정류장에서 다시 전화할 게." 이렇게 하여 익숙한 길로 안내될 때까지 아내는 딸아이의 아바타였다......'삼보승차'
3년 전 서울에서 수원으로 이사했다. 서울은 버스, 지하철, 마을버스 등 구석구석까지 잘 연결되어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 데, 수원은 버스도 오래 기다려야 하고 교회까지 가려면 승용차 아니면 어려움이 많아 운전을 가르쳤다. 대학교 다닐 때 장인어르신이 차를 사준다고 땄던 장롱면허를 3년 전에 사용하게 되었다. 2종보통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1종보통으로 바뀌었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석을 맞추고, 백미러와 사이드 미러 등을 조정하고 시동을 거는 것부터 하나씩 가르쳤다. 한적한 거리를 찾아서 같은 장소만 한 달을 맴돌았다. 그러다 어느 날 빨간색 원에 검은 숫자로 '50'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고 당당히 나도 잘 안다는 듯이 아내는 말했다. "저거 50 미터 가서 멈추라는 거지? 지금부터 준비하면 되는 거지?" 그날은 그럭저럭 몰고 집까지 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참을 T자 주차와의 전쟁 후 내리면서 "자동차 열쇠는 당신이. 무거워." ......'1g여사'
에피소드가 비단 이것뿐이랴!
공들여 매준 밭의 흙처럼 더 보드랍고 포실한 아내의 실수투성이 괴물은 나날이 몸을 불려 나의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어쩜 나는 오로지 나와 딸아이 앞에서만 작고 어수룩한 요괴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녀를 기대하며 가는 곳마다 삼보승차시킬 무한 관성과 기꺼이 1그램의 물건도 받아줄 순애보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