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따스함으로 바뀌는 순간

2024년 11월 21일, 아침

by 김세환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불행은 서로의 무관심으로 오가는 대화마저도 단절되고, 행복은 서로의 바라봄만으로도 잔잔히 떨리는 신음조차도 공유된다.

아침 6시, 밝음을 보려면 아직도 한 시간은 넘어야 한다. 늦가을의 마지막 언저리 차가운 새벽바람에 모자를 눌어 쓴 한 사람은 오직 세 사람만 공유한 숫자를 누르고 있다. 손잡이를 돌리면서 현관등은 낯선 침입자를 감시한다. "오셨어요?"라는 말과 함께 나의 누명은 벗겨지고 지난주 김장을 마치고 남은 배추는 아내에 손에서 구수함으로 둔갑하고 있다. 딸아이의 방에서는 벌써 끝났어야 할 드라이기 소리와 함께 반복하는 빗질에서 거친 손질이 거울을 통해 보인다. 딸아이는 만족할 때까지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다. 나는 부엌으로 가 아내에게 살짝 볼에 대고 "다녀왔어." 말한 후 "앗, 차가워" 말이 떨어지기 전, -등짝 맞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기에- 내방으로 사라져야 한다. 새벽에 몸만 빠져나온 이불에는 아직 나의 흔적이 있다. 이불을 정리한다. 난 커피 내리는 임무를 이행한다. 쟁반에 담긴 그라인더에 갈색콩을 넣기 전에 신선한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손잡이를 돌려 떨어지는 고운 입자는 벌써 군침을 돌게 한다. 오늘은 갈리는 소리조차 부드럽다. 커피포트의 물은 벌써 끊고 있었고, 거름종이를 깔때기에 넣고 조금씩 뜨거운 물을 흘려보낸다. 가루들은 뜨거워 물에 덴 듯 물집처럼 부풀어 오른다. 싱그러운 향들이 집안의 향들과 섞인다. 이때 도공의 오랜 손길을 마치고 나온 딸아이는 "내 머리 어때?"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아내의 "나와 얘기 좀 해요."라는 말과 같다. 시선을 피해서는 안된다. 방황하는 눈동자도 들켜선 안된다. 그렇다고 바로 대답해서도 안된다. 몸은 반사적으로 반응했지만 여자들의 언어를 나는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예쁘다"라고 하면 "어떻게 예쁘냐"고 할 거고, "그냥 예쁘다"고 하면 "그냥 어떻게 예쁘냐"고 할 것이다. 이렇듯 무한 반복의 블랙홀에서 결론은 언제나 "아빠는 나에게 관심이 없어."로 끝날 것이다. 이런 질문은 나에게 언제나 수수께끼다. 이때 나의 구원자인 아내는 말한다. "밥 먹으면서 이쪽에 롤을 하고 있으면 굵게 말려 훨씬 낫겠는 데." 이런 답은 내가 매번 놀라기에 충분하다. 방으로 달려가 롤을 말고 돌아온 딸아이의 젓가락이 가볍다. 나도 오늘의 4차 방정식에-누가 풀었건- 안도감으로 수저에 따뜻함을 담는다. 아내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며, 그녀의 자리를 찾는다.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창밖으로 몇 초 시선을 머문다. 간간히 시계를 보며 '아직 늦지 않음'을 확인한다.

6시 40분, 딸아이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현관으로 향한다. 12시간의 엄마와의 이별에 딸아이는 아직도 익숙지 않다. 엄마가 복도 끝날 때까지 자기를 보고 있지 않으면 짜증을 낸다. 식사를 마친 나는 방으로 와서 출근하기 전 어제 읽었던 책을 펼쳐 읽고 있다.

7시 10분, 나도 책상을 정리하고 출근한다. 아내는 결혼 후 한 번도 나와 아이가 나갈 때 현관까지 나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무엇을 하다가도 나갈 때면 꼭 한번 안아주고 보냈다. 이제 아내는 한줄기 불꽃처럼 타오르던 아침 전쟁의 불길을 사그라트린 점령군으로 그녀의 전리품을 취할 것이다.

집이 안락하다는 것은 우리를 거두어 주거나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 벽들이 내 것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 집이 우리 안에 아늑한 느낌을 마련해 준다는 바로 그 점이다. 마음속 깊이, 샘에서 물이 솟아나듯, 꿈들이 생겨나는 그 희미한 덩어리를 만들어 놓는다는 점이다.


오늘 아침, 거센 찬바람이 따스하게 커피향처럼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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