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파일을 정리하면서 아내의 유방암 2번째 진단에 대한 일기를 보게 되었다. 그날의 슬픔, 절망, 분노, 체념이 고스란이 나에게로 옮겨왔다. 그대로 적어본다.
"2012년 7월 12일 맑음, 나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
어제 아내의 검진이 있었다. 결과는 최악이다. 아무래도 재발이 된 것 같다는 진단. 월요일에 조직 검사를 한다고 했다. 왜 이러한 아픔은 우리에게만 오는 것일까? 그녀같이 하나님 앞에 거룩을 갈망했던 여자가 있을까? 첫번 째는 1998년 디스크 수술, 두 번째 2004년 유방암, 세 번째 2010년 갑상선암, 이번이 네 번째다. 이젠 뭐라 할 말이 없다. 밤새 이불을 뒤집어 쓰고 들썩거림을 난 온몸으로 느껴야 했다. 큰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흐느끼기만 했다. 차라리 그냥 목놓아 울었다면 나도 같이 울었을 것이다. 그것이 더 아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이 더 아프다. 가슴이 찟어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그래도 난 오늘 출근을 했다. 출근길 나는 몇번을 차를 세워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눈물은 계속 흐른다. 이런 일이 아니어도 평상시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주체를 못하겠다. 어디서 이 뜨거운 것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지 모르겠다. 수술전 내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제는 오른쪽 가슴하나를 완전히 절제를 해야한다. 여자의 상징을 소멸해야만 하는 그녀의 맘이 어찌하겠는가? 아내는 미안하다는 말만 한다. 다음 생에는 '건강한 여자를 만나'라고 한다.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불안감과 상처가 되는 지 아내는 모른다. 그냥 한 숨만 나온다. 먹먹하고 아무 생각이 없다. 그냥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하루를 보냈다. 마음이 아리다."
사장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1주일의 휴가를 받았다. 혼자 있을 아내와 같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딸아이도 기말고사라 빨리 끝내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012년 7월 13일 오늘도 맑음.
오늘 우리는 속초로 벼락 여행을 간다. 아내도 딸아이도 집에서 주말을 보내기에는 너무도 먹먹하고 갑갑하다. 딸아이도 기말고사 최악의 점수를 받았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간다. 밤바다를 보러 간다..........
3년전 아내는 첫번째 유방암 수술을 하고 5년이 지나 차병원으로부터 완치 판결을 받았다. 아내와 나는 너무 기뻤다. 그날 아내는 나랑 한 번도 단풍구경을 못했다고 원망했다. 그 즉시 나는 설악산으로 차를 돌렸다. 딸아이 하교 시간이라고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조금 전 지난 온 길이 바로 3년전의 그 길이다. 그 날의 따뜻했던 햇살과 아름답게 붉게 물든 단풍의 기억이 선명하다. 설악산과 속초는 묵묵히 자기의 자리를 지켰지만 그 때와 지금의 우리는 완전히 반대다. 딸아이도 아무 말이 없이 엄마의 눈치만을 살피고 속으로만 삼키고 있다. 딸아이가 눈물을 보이면 우리는 모두 목놓아 울것이다. 서로의 눈을 피하기만 한다. 그냥 손잡고 걸어가는 것이 전부다."
"2012년 7월 16일 왜이리 맑기만한가?
11시 아내와 함께 조직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다. 아내와 결혼하고 제일 많이 갔던 곳. 차병원이다. 이제 곧 2차 수술을 받아야 한다. 항암은 하지 않는다고 아내는 좋아하지만. 정말 불안하고 어려운 심정이다. 5년간 끊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매초, 매순간이 초조하고 어렵고 그녀가 사라질까 두렵다. 너무 힘들다...."
더 이상의 일기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선명히 그릴 수 있었다. 수술전날 자정, 교회에서 하나님앞에 드린 원망과 분노.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을 수술방에 들여놓은 두려움과 공포에 싸인 동지들이 모인 대기실, 수술방에 들어가기 전 아내의 '어쩜 안녕'일지 모르는 그 쓰디쓴 미소. 멀어져가는 수술침대를 한없이 바라보며 문이 닫히는 절망. 수술중인 아내를 기다리는 대기실의 번호판 '김자영 수술중'. 그래도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찰밥을 밀어넣어 주시던 장모님 앞에 숟가락을 내팽겨쳐버린 일. 어머니와 이모, 장인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 화장실 변기에 홀로 앉아 머리를 박고 울고 있었던 나. 아내의 수술이 마칠 때까지 대기실과 흡연실을 오가며 줄담배를 피웠던 기억. 대기실 앞에서 앉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이던 나. 아내를 2번째 집도하신 김경식 선생님의 환한 미소. 나는 안심 했고, 모든 것이 다시 돌아왔다. 이제 아내만 제자리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벌써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당시 아내의 유일한 소원은 딸아이가 스무 살되는 생일까지 사는 것이었다. 지금 딸아이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변해 엄마가 자기를 낳았던 나이, 26살이 되었다. 아내의 간구했던 소원은 이뤄졌다. 그런데도 우린 무엇을 더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죽음앞에서 약속했던 유일한 소망이 이루어졌음에도 우린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더 많은 것을 갈망한다. 오늘도 아무 일없이 무사히 보냈다는 감사를 우린 하지 못한다.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주는 것이 우리 남은 생의 또다른 유일한 소원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