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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여자#07] 백 년의 고독

내가 사랑한 책

by 꼰대 언니

한 사람이란 그가 경험한 것들의 조합이다. 그가 만난 사람들, 그가 여행한 곳, 그가 읽은 책, 그가 본 영화, 그가 먹은 음식..


국민학교라는 명패를 단 서울의 변두리 교실은 삐걱거리는 마루와 닦지 않아 불투명한 유리, 그리고 교실을 꽉 매운 아이들로 번잡했다. 교실 뒤 보잘것없는 나무 책장에는 낡아서 해질 대로 해진 표지를 단 책들이 단출하게 십 수권 꽂혀 있었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은 평화로운 아침 시간을 원하셔서 조회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자리에 앉아 책을 읽게 하셨다. 매일 조금씩 읽어 나갔던 책들은 어린 나를 조금씩 완성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은 책은 꽤나 두꺼웠던 서유기였다. 손오공을 강조하여 어린이용으로 편집 발췌된 서유기가 아닌 서유기 완역본. 그때는 서유기가 중국의 4대 고서인지도 몰랐지만, 지금도 생각나는 4명의 주인공들의 독특한 캐릭터와 81가지의 사건 사고는 흥미로웠고, 지금 생각하면 캐릭터와 모험이 버무려진 긴 로드 무비였다.


사촌언니로부터 세계 아동 문학상을 받은 전집을 물려받았었는데, 지금으로 따지자면 해리포터 류의 상상과 모험이 합쳐진 이야기였다. 이렇듯 기억하는 좋아했던 책들이 판타지에 기반을 둔 소설이라는 점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MBTI의 대문자 F를 타고난 듯하다.


사춘기가 되어 여학생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묘사한 하이틴로맨스 시리즈 백수십 권을 볼이 빨개지면서 완독 하고, 영웅문과 같인 무협지를 거쳐, 나를 격동하게 만든 책은 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다.




Magical Realizm, 마술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든 신화와도 같은 한 가문의 이야기에 사로 잡혔다. 내가 읽던 영어 중역본인 문학사상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아닌 스페인어 직역본인 ‘백 년의 고독’으로 발행된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에, 넷플릭스에 ‘백 년의 고독’ 시리즈가 올라왔다.


이 넷플릭스 시리즈는 소설을 읽어 주는 듯한 구조로 철저히 상상 속 문학을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고독을 DNA에 박제한 가문의 대를 잇는 이야기는 현실과 상상 속에서 묘한 위안을 준다. 영화는 우리가 가진 모든 종류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충족되지 못하여, 고독히 소멸하는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술과 같이 그린다. 슬프지만 따듯하다.


주욱 고독해왔고 앞으로도 고독할 것이니까. 고독하게 소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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