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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여자#08] 다 먹어도 그것만은 못 먹겠어.

by 꼰대 언니

그가 가본 곳, 그가 먹은 것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믿음 아래, 맛을 경험하는 것은 ENFP인 나에게는 평생 중요한 과제와도 같았다.


나라는 사람을 먹자 퀘스트 게임 캐릭터로 생각하자면, 나의 태생은 먹자 유니버스에서 성골까지는 아니어도 육두품 정도는 되는 집안이다. 어린아이들이 접하기 쉽지 않은 음식에 일찍 노출되었다.


어머니는 강원도 출신으로, 버섯과 가지를 포함한 난이도 있는 채소와 동해바다에서 온 오징어와 명태를 비롯해 각종 해산물로 어린 나를 살찌웠다. 손이 큰 어머니는 겨울이 되면, 들통 가득 사골 육수를 우려내어, 매일 아침 나는 곰탕 한 그릇을 원 샷 하고 학교에 갔다. 높은 골밀도를 자랑하는 통뼈 체질은 타고난 것보다는 만들어진 것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이북 사람이라, 먹을 게 부족한 북쪽 특성상 책상다리 빼고는 다 먹을 수 있다는 정신으로, 한층 레벨이 높은 메뉴로 나를 이끌었다. 걸레 짠 듯 탁한 육수에 뚝뚝 끊어지는 메밀면의 꼬린 냄새가 낯선 평양냉면 (단연코 말하는데 여러분이 즐기는 우래옥 평냉은 내가 맛본 하드코어 평냉을 반도 못 따라온다), 도마에 가지런히 올라있던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던 복날의 수육, 아바이란 이름의 정체 모를 내장과 피로 범벅이 된 듯한 순대. 아버지를 따라 입술에서 윤이 나도록 때로는 보양이라며, 때로는 해장이라며, 여러 식당을 찾아다니며 갖가지 음식을 즐겼다.


충분히 접해 보지 못한 영역도 존재하였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으로 돈가스와 함박가스 정도가 어려서 먹어본 양식의 전부라 할 수 있다. 피자헛이 막 생긴 대학 입학 후에나 피자와 파스타를 맛봤다.


회사에 입사하며, 나의 미식 퀘스트는 비로소 더 넓은 세계로 모험을 시작한다. 법인카드라는 마법의 무기를 장착한 후로는 VIP 접대를 핑계로 미슐랭 식당들까지 어렵지 않게 탐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유럽과 미국은 물론 아프리카, 중남미 구석구석까지 35개국을 넘나들며 모험은 다채로워졌다.


그런 내가 못 먹는 것이 있을까? 체구를 보고 아무도 의심하지 않겠지만, 나의 호불호는 특정 포인트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뭔가 꿈틀거리는 기다린 모양의 것을 꺼려한다. 연탄불 위에 올려 산 채로 먹는 곰장어를 차마 볼 수 없다. 개불과 멍게도 마찬가지. 사람의 장기 같은 그 모양을 결코 삼키고 싶지 않다. 그래도 요즘 들어 조금 무디어졌는지, 못 먹던 추어탕의 깊은 맛을 가끔 즐기게 되었고, 붕장어의 포실 포실한 식감도 종종 찾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쉬지 않고 포식자의 상위 레벨로 성장하고 있지만, 다채로왔던 퀘스트의 끝은 결국 집밥으로 종결되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된장찌개와 꽈리고추 찜, 고사리나물 따위가 사무치게 그리운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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