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와 시험관 시술
이효리의 솔직한 고백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아기가 내게 오지 않더라도 시험관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의학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다"라고 말한 것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핫토픽이 되고 있다.
시험관시술로 아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댓글로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시험관으로 힘겹게 노력 중인 사람들이 슬퍼할 기사"라는 댓글 한 줄에서 점쟌지만 절절한 아픔이 느껴진다. 시험관시술은 단순히 '의학의 힘을 빌리는' 선택이 아니라, 아이를 향한 간절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마지막 희망의 끈이기 때문이다.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얻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자녀들이 마치 의술이라는 인공적인 선택의 결과물로 여겨지는 상황에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가진 스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에도, 여태껏 그녀의 영향력이 미친 사회적 파장을 고려할 때, 그리고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을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지금, 경솔한 발언으로 평가되며 사람들의 비난을 모으고 있다.
나 역시 결혼 후 3년간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20년 전 시험관 시술을 선택했고, 첫 아이를 첫 번째 시술에서 가질 수 있었다. 좋다는 한약, 좋다는 체조, 갖가지 민간요법이 횡행하던 시대였기에, 이것저것 해보던 나는 곧 피로감을 느꼈다. 과학이 가장 확실한 선택으로 여겨져, 유명하다는 산부인과 선생님을 찾았었다.
이후 나는 비슷한 난임의 고민을 가진 직장동료들에게, 시험관 전도사가 되었다. 나의 설파의 결과물로 네 명의 아기천사들이 세상에 와주었으니 흐믓하다.
더불어, 내가 다닌 산부인과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협력기관이었기에, 수없이 채취된 나의 난자가 한국의 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마저 느낀다.
그러나, 십 수 번이 넘게 시험관 시도를 하였으나, 임신에 이르지 못한 나의 친구도 있다. 그녀는 결국 세월이 지나 예쁜 아이를 가슴으로 품었고, 지금 늦둥이 딸을 잘 키우고 있다. 매번 시술 결과에 절망하던 친구를 지켜보면서, 어떤 이에게는 시험관 시술 자체가 희망고문과 같은 고통으로 느껴졌다.
이효리의 발언이 사람들이 비난하는 근거인 무책임한 자유주의가 아니라, 이런 아픔을 피하고자 하는 두려움도 담겨있다고 해석하기에 그녀의 발언이 마냥 섭섭하지는 않다. 누구나 어쨌든 고통과 슬픔은 피하는 쪽으로 선택하게 마련이니까.
한편, 개인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효리를 응원하고 있다. "애기가 생기면 좋은 거고 안 생기면 안 생기는 대로 살겠다는 뜻"이라며 이효리의 발언을 자연을 따르는 의지로 해석하고 발언의 중립성을 보호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들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효리의 발언은 타인의 선택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안 하겠다는 사람은 그냥 둬라"는 댓글은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타당한 의견이다.
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 다른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되, 그것이 개인의 표현 자유를 억압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는 지혜로운 대화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아닐까.
이효리의 한 마디 발언이 던진 파장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진정 성숙한 사회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