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본인상 부고를 받고
CEO의 본인상 부고는 갑작스러웠다.
딸의 결혼식에서 하객들의 술을 마다하지 못하고 과음으로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나의 직속 상사와 동기라 20년전 퇴근 후 술자리에서 자주 어울렸다. 한자리에서 소주 대여섯 병을 마셔도 끄떡없었다. 무용담처럼, 건강검진 때면 유독 튼튼한 간 때문에 마취가 안돼 곤욕이라고도 했다.
덩치도 산만 하고 목소리도 걸걸한 산적 같은 외모지만, 가까이서 보면 인형 같은 속눈썹 아래 쌍꺼풀이 선한 기운을 숨기지 못했다. 영업에서 고객의 불만 사항을 가장 먼저 듣고, 개발팀장인 그에게 부족한 스펙, 원하는 판가, 여러 요구사항을 해달라고 요청하기 마련인데,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확실히 밝히는 명쾌한 성격 덕에 함께 일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삼성전자를 퇴사한 후, 그는 승승장구 사업부장으로 승진하더니, 곧 CEO로 오르며 직장인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카메라 마사지라고 할까? TV에서, 전문 코디에게 조언을 받은 듯한 양복과 넥타이, 살짝 컬을 줘서 부드러운 헤어스타일의 그를 볼 때 마다, 사시사철 누런 공장 유니폼을 입던 내가 알던 사람은 어디 갔나 싶었다. 가끔 후배들을 만나면, 전사 임원 회의 때마다 그의 울화와 겁박에 힘들다는 푸념이 많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그도 변한 모양이다.
계속되는 실적 부진에 그가 잘린다는 소문도 가끔 들렸다. 소문이라는 것은 사실 누군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뒷담화하여 퍼지기 마련아닌가? 재작년, 반도체가 경쟁사에 뒤쳐진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반도체 사장단이 전면 교체되면서, 그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번엔 그가 운이 좋다는 둥 뒷말이 분분했다.
사흘째 장례식장은 평온했다. 쓰러지기 전 일주일, 그의 일정은 오너와의 중국 출장과 주주 총회, 협력사 사장단 만찬, 딸의 결혼식, 신제품 출시 기자 간담회 등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나라면 한 달을 줘도 못해낼 일정이다.
“정원아, 나는 트로트가 정말 좋아. 일 끝나고 차안에서 듣는 트로트에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10년전 2차 술자리를 가기 위해 얻어 탄 그의 차에서는 뽕짝이 흥겹게 울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툭 털고 일어날 것 같은 무심함과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릴 것 같은 명랑함으로 기억되던 분이셨다. 그런 그도 괜찮지 않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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