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파밸리 로드무비
지난 주말, 십 년 전 재미있게 봤던 2004년 영화 '사이드웨이'를 넷플릭스에서 찾았다. 빙고!
전처와의 이혼 후 우울의 늪에 빠진 교사 마일스는 자전적 소설을 탈고하고 출판사의 연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쇠락해 가는 배우이지만, 외모를 앞세워 여전히 바람둥이인 잭은 일주일 후 결혼을 앞두고 있다. 정반대의 성격임에도 대학 동기이자 절친 인 두 사람은 총각파티 겸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인근으로 와인 투어를 떠난다.
바에서 오랜만에 만난 소믈리에 마야와 와이너리 시음장에서 매력적인 스테파니를 만나면서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의 리즈 시절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여행은 소란스러운 결말로 치닫는다.
어떤 일에도 주저하는 마일즈의 소심함과 여자라면 어떤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 호색한 잭의 행각이 극히 대비되는데, N극과 S극 양극단의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하는 우정은 이 드라마를 이끄는 동력이다. 여정의 배경이 되는 다양한 와이너리와 포도밭은 화면을 와인 향기로 채우고, 와인에 취한 삶의 우아함과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역동성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서, 오도 가도 못하게 영화에 빠져들게 한다. 게다가 영화 뒷부분 19금 장면에서는 폭소가 터질 수밖에 없다. 이토록 완벽한 코미디라니.
10년 만에 다시 본 이 영화가 내게 새롭게 느껴지는 사정이 있다. 재작년, 주택으로 이사한 후 얻은 넓은 지하 공간을 와인 셀러로 활용하면서, 와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최근 두해 동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와인 장터를 찾아다니며 수입의 5% 이상은 와인 구입에 할애하는 와중에, 다시 본 영화 대사에서 튀어나오는 와인 브랜드를 알아차리니 영화가 새삼스럽다.
전처를 그리워하는 마일스는 그녀와 연어를 안주삼아 "오퍼스 원"을 마신 과거를 회상하며, 전처의 취향을 추앙한다. 왜 와인에 빠졌냐는 마일즈의 질문에 소믈리에 마야는 "사시카이아, 88년산!"이라고 지체 없이 대답한다. 영화의 클라이 막스는 마일스가 애지중지하여,(사실은 결혼기념 10주년에 마시려고 사놓은), 차마 따지 못하던 슈발블랑 61년 산을 의외의 장소에 따 먹어 버리는 웃기면서 슬픈 장면일 것이다. (스포라서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영화를 보고 너무 와인이 마시고 싶어, 와인냉장고에서 자고 있는 사시카이아를 따면 안되냐고 사정했지만, 좀더 익혀야 맛있다며 거절당했다. 그래 2년만 더 기다리자. 그때 다시 사이드웨이를 봐야지. 와인이 요물이다. 혼자서 한병을 선뜻 따지 못해서, 꼭 함께 할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한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놓쳐서는 안 되는 영화 "사이드웨이" 추천합니다.
중앙일보 관련 기사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