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0분 SRT로 떠난 부산. 당일치기 여행의 기대감과 이른 아메리카노 한잔 때문인지, 2시간 반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부산은 서울보다 따듯했다. 가로수는 아직 초록을 띠고 있으며, 멀찌감치 산둥성이 의 윗부분만 붉은 단풍이 보이는 정도.
부산에서 브랜딩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계신 대표님의 추천으로 부산역에서 네정거장 15분거리의 영도 봉래탕으로 향하였다. 영도다리 밑 상가의 2-3층에 자리하고 있는 봉래탕은 리노베이션으로 작지만 깔끔했다. 작은 온탕과 열탕 두 개에는 아주머니들이 앉아 계시고 동네 단골들로 아침 시간 치고는 붐볐다. 세신 맛집으로 소문난 봉래탕에 10시 예약을 걸어 둔 터라 기다리지 않고 세신 서비스에 들어갔다.
전신 세신 기본 + 오이팩 패키지는 하.. 3만 원으로 서울의 반값도 되지 않았다. 능숙한 세신사님은 대형 타월로 나를 감싸주시더니 따듯한 물을 부어 주셨다. 새벽에 나온 탓에 긴장했던 몸이 스르르... 풀어지며, 몸을 감싼 타월은 나를 강보에 싸인 아기로 만들어 모든 근육을 편안히 이완시켰다. 아메리카노만 아니었다면 잠이 들었을 텐데..
세신 서비스는 구석구석 이어지고 오이를 직접 강판에 갈아 얼굴에 올려주시고 오일 마사지와 괄사를 이용한 간단한 전신 마사지로 이어졌다. 눈을 떠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이게... 3만 원?! 서울이라면 8만 원 정도의 전신 오일 마사지 패키지에 버금가는 시간과 양의 서비스에 놀랐다. 세신사님께 음료수와 함께 머리 조아려 감사드리고, 봉래탕 5층에 자리 잡은 목욕탕 라운지 콘셉트의 카페 일렁 라운지로 향하였다.
(다음에는 전신마사지를 예약해야지 다짐해본다. 한시간 반이상 걸린다고 한다)
봉래탕 5층의 일렁 라운지는 봉래탕 주인이 머무르던 개인 집을 리노베이션 한 곳이다. 4녀 1남의 5남매를 둔 당시 목욕탕 현금 부잣집인 탓에, 방이 6개는 되었고, 나무패널로 예전 고급 인테리어가 이제는 조금 빛을 발하여 레트로 하고 빈티지한 감성을 내뿜었다. 방마다 다른 컨셉과 목욕탕을 주제로한 책, 잡지, 사진 작품, 굿즈 등이 전시되어 재미있었다.
이 일렁 라운지는 에이전시 대표님의 또 다른 사업이다. 집 앞 목욕탕이라는 감감적인 계간지를 발간하시는 편집자이시기도 하신 대표님이 몇몇 목욕탕과 팝업 스토어를 거쳐서 만든 카페이다. 일본에는 목욕탕마다 이런 라운지가 있다고 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봉래탕의 2세 분이 이런 혁신을 수용하신 탓에 멋진 목욕탕과 까페 라운지의 콜라보가 완성되었다.
목욕을 마친 후 갈증과 허기는 일렁 라운지의 딸기우유와 바나나우유, 말차 라테 류의 음료 그리고 예쁜 오리 모양의 젤리가 올려진 파운드 케이크로 달랠 수 있었다.
집 앞 목욕탕 잡지에서 엿보았던 대표님의 감각으로 채워진 공간은 그 자체 만으로도 힐링이었다.
일렁 라운지를 나와, 바로 옆 영도 항구의 창고들을 개조한 로스터리 카페 모모스로 향했다. 영도의 대형 창고들은 성수동의 대림창고처럼 카페, 레스토랑, 이벤트 장소로 속속 변신 중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Pier 39과도 같은 느낌이다. 인더스트리얼 감성과 대형 창고가 주는 공간감과 바다. 카페 모모스는 대형 유리를 사용하여 공간을 구분하여 로스터리와 커피 연구소를 두어 항구의 습기를 해결하면서, 관람객의 볼거리를 선사하였다. 커피 시향과 구매도 할 수 있는데, 향기가 예사롭지 않다. 저녁 6시까지만 운영한다니 참고하시길.
모모스는 전략적으로 부산 외에는 지점을 두지 않고 있다. 여기 로스터리 겸 카페 겸 모모스 직원의 사무실인 영도 점외에도 온천동에는 구옥을 개조한 멋진 지점이 있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꼭 가봐야 할 곳.
성수동을 리노베이션 했던 프로젝트 팀이 영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라던데, 앞으로의 영도가 어떻게 바뀔지 기대된다. 모모스 옆의 다이닝 라운지도 꼭 가보고 싶다.
영도를 떠나 센텀으로 향했다. 센텀 아트 소향에서 지인이 쿠사마 야요이 강연에 참석하는 것은 이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이다. 도트 프린세스라고 불리운 쿠사마 야요이의 점, 도트의 무한성에 대한 집착과 남다른 인생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아트 소향에서는 부산을 배경으로 활동하시는 윤병운 작가의 단독 전시전 [대기의 대기] 도 볼 수 있었다.
아득하면서도 쓸쓸하면서도 따듯한 감성의 작품들이 좋았다.
회화는 하나의 장면을 담는다.
장면은 언제나 대기를 포함한다.
무엇을 그려도, 공기 반 물질 반.
그 장면은 움직이지 않는다.
정지된 장면은 관찰을 허락하고,
관찰은 의미를 발견한다.
시간은 유일한 순간의 연속이기에
멈춤이 만든 균열은
영원을 암시한다.
갤러리를 나서서는 벌써 오후를 넘긴 시간, 센텀 금수복국에서 복국과 복튀김으로 요기를 하고
가까운 센텀 앞 요트 선착장에서 노을과 야경을 위한 요트 투어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최근 몇 년간 센텀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돋아난 빌딩 숲과 광안대교의 조명이 어우러서 아름다운 낙조와 이어지는 야경이 탄성을 자아냈다. 요트들 한 지점에서 모이더니 폭죽 쇼를 같이 하는 통에 연말 파티 분위기도 미리 느낄 수 있었다. 요트는 보통 겨울철에 5시 반, 7시 정도에 출발하는 듯하고 카카오 예약도 가능하다.
8시 15분 기차를 타기 전에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의 신발원에서 군만두를 테이크 아웃으로 사서 요기를 하였다. 줄이 길어 따듯한 콩물과 과자를 먹지 못해 아쉽다.
부산은 변하고 있고, 올 때마다 아름답다.
무엇보다 부산 사람들의 친절함과 벽이 없는 친근함이 부산을 더 아름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