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miely Dec 04. 2020

1. 괜찮지 않아서 퇴사했습니다.

괜찮지 않아서 퇴사했습니다.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을 떠올리면 먼 옛날 일 같다. 3년 전, 나는 대한민국의 직장인으로서 여러 직장을 전전하고 있었다. 도저히 오래 붙어 있을 수가 없었다. 나를 끈기가 아예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당시의 나는 경직된 조직문화에 면역이 없는 사람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당시 구체적으로 내가 누구인지, 하고 싶은 일 중 잘하는 일을 어떻게 선택하여 구체화할지 제대로 확신이나 계획은 없는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다소 무턱대고 퇴사한 셈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미래 계획을 명확히 따질 여력이 없었다.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애초에 지원하는 직장과 부서를 선택하는 기준이, 진정한 나를 이해한 뒤 세운 기준이 아니었다. 지원할 회사를 선별하는 기준은 월급, 규모, 주변 사람들에게 명함을 줄 때 모두 알만한 회사인지였다. 내가 잘 할 수 있는지, 흥미가 있는지, 관련된 사전 경험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는 않았다. 일단 붙고 보자, 붙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취직이 중요하지 적성이 중요한가, 라며 수도 없이 공채 기간에 맞춰 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입사한 회사에서 업무 관련 부족한 지식, 무엇보다 업무에 대한 흥미의 부재로 인해 일차적으로 괴로움을 느꼈다. 전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마케팅해야 하는 일이 버거웠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관계였다.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직장 내 괴롭힘의 약한 버전을 경험하면서, 밝았던 나는 움츠러들었다. 

  

  “막내가 좀 붙임성이 있어야지.”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우리 때는 더 엄격했는데 뭐 이 정도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소위 붙임성 있는 막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우가 될 수는 없는, 곰의 범주에 속하는 나는, 자꾸만 선배들과 친해지려는 과정에서 헛발질만을 할 뿐이었다. 회사 밖에서 나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우정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회사 안 인간관계는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예의 있되 친근하고, 눈치가 빠르되 얌체 같지 않고, 맡은 업무를 빠르게 하되 잘난 척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아야 하는 도시 속 정글.  느린 나무늘보가 적응하기에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업무에 열정이 없는 것 같네.”

  “애교가 너무 없는 편인가 봐.”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편이었던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돌아온 차가운 반응을 견디기 힘들었고,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붙임성 있는 팀 내 사회생활에 대한 욕구를 접어 버렸다. 그렇게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던 회사생활은, 소위 괜찮지 않은 내 잘못으로 인해 퇴사로 막을 내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