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코타키나발루
말레이시아의 바다에 대하여 feat. 코타키나발루
내가 말레이시아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환경에 있다. 한국에도 내가 거주하던 경기도에서 가깝게는 서해안과 동해안의 바다가 있었고, 제주도라는 예쁜 섬도 있다. 산도 많고, 결코 자연환경이 척박한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일한 서울은 언제나 수많은 건물과 기술로 점철된 첨단의 느낌이 일상적인 곳이었으며, 나무는 예쁘게 조경되었고, 강은 예쁘게 디자인되었다. 만들어진 자연의 느낌이 강했다. 그에 반해 말레이시아에는 자연의 기운이 정말 강하다. 현재 회사가 위치한 쿠알라룸푸르는 말레이시아의 수도이자 대도시로, 주변에 바다가 없다. 바다를 보려면 차나 비행기를 타고 근처 다른 도시로 가야 한다. 대신 한껏 머리를 풀어헤친 야자수가 곳곳에 즐비해, 적도 근처에 있는 나라에 살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코타키나발루의 경우, 말레이시아 동쪽, 보르네오섬 북쪽의 ‘사바 주’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립 해상공원의 5개의 유명한 섬에 보트 타고 1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섬에 가지 않더라도 코타키나발루의 중심 시가지에서 언제든 고개를 돌리면 바다를 볼 수 있다.
코타키나발루에서 일했을 때, 내가 일한 건물 바로 옆이 바다였다. 건물에서 나와서 1분만 걸으면, 아니, 고개만 돌리면 바다가 있었다. 가끔 일하다가, 또는 개인적인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바다를 보는 순간 온갖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내 워라밸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는 ‘살아 있는 자연환경’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꾸며진 자연이 아닌, 생동하는 자연,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생명력이 좋았던 거다. 문명에 가려진 가꿔진 자연이 아닌. 말레이시아는 한국처럼 문명과 자연이 공존함에도 자연 특유의 강한 생명력이 묻히지 않는 특성이 있다. 나무 하나하나가 살아 있고, 길을 걷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진다. 비단 바다의 깊은 푸른색과 바닷바람과 야자수만이 그 분위기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조성된 길마저도 자연의 힘과 조화를 이룬다. 강한 에너지가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최첨단 네모 박스 안에 구겨져 얌전히 살아가는 내가 아니라, 숲에서 짚라인을 타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집으로 돌아오는 듯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어쩌면 나는,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파릇파릇하다 못해 경외심마저 느껴지는 어떤 에너지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했던 걸지도 모른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살아있음’을 느끼기가 어렵지 않다.
도시 코타키나발루가 위치한 사바 주는 보르네오섬에 위치하고 있다. 보르네오섬 아래에는 인도네시아의 일부, 위에는 말레이시아의 일부와 브루나이 전체가 위치한다. 하나의 섬 안에 3개 국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보르네오섬은 아마존 다음으로 산소발생량이 많은 곳으로 보르네오섬의 사바 주에서 지낼 때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미세먼지 걱정을 하며 마스크를 착용할 일은 그간 없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필수적으로 마스크를 쓰지만 말이다. 집 앞에서 상쾌하고 생기 넘치는 말레이시아의 공기를 맡을 때,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말레이시아에 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