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izabeth Price, 1998, Boulder, Packing Tape, Ongoing since 1996
움베르토 에코*의 Lumbar Thought (1976)는 짧은 글이지만 내가 박사논문을 쓰는 데 있어 작품 논문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느끼게 해 준 소중한 참고문헌이다. 에코는 이 글에서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청바지를 착용했을 때 느껴지는 신체적 감각을 예민하게 묘사하면서, 불편한 육체로부터 발생하는 감각은 생각하기를 방해한다고 했다. 신체를 압박하지 않고 신체의 표면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승복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스님은 자신을 비롯하여 인간과 만물, 세계를 바라보며 진리를 찾고자 수행한다. 내적 삶(interior life)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스키니 진을 입고 앉아 수행한다고 생각해 보라. 당장 내 배와 무릎을 압박하는 게 신경 쓰여 죽겠을 텐데 세상의 진리가 머릿속에 들어오겠는가.
에코는 이렇게 자신의 신체를 감각하는 표면적 자기 인식(epidermic self-awareness)이 자신이 세계 안에 존재하면서 세계와 소통함을 깨닫게 한다고 했다. 이런 에코의 관념을 바탕으로 조앤 앤트위슬**은 'dressed body(옷을 입은 신체)'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논지는 우리의 신체는 의복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의복을 착용한 신체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고 교류하며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학자는 역시 다르긴 달랐다. 이렇게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이론을 읽기 쉽게 설명하다니. 작품 논문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라는 감을 잡았다.
작품 논문을 영문으로 표현하면 'Practice-led research'이다. 용어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무언가를 구현해 내는 창의적 작업 과정 및 결과물(practice)이 연구 방법론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아티스트인 엘리자베스 프라이스***의 박사논문의 일부 'side kick' (2000)이 있다. 순수 예술이나 공예 및 디자인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학술적 또는 실무적인 가치 공헌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프라이스의 박사논문은 순수 예술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런데 프라이스는 대담하게도 선행 연구 인용이 전혀 없는 논문을 썼다. 논문의 내용 중에서 관련 분야의 기존 연구에서 어떤 연구 방법론, 결과, 또는 이론을 정립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선행 연구들을 동의 및 지지하거나, 또는 새롭고 유의미한 연구 결과나 이론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참고문헌 인용이 전혀 없다니 있을 수 없는 논문의 형태였다. 전해 듣기로는, 심사위원들이 처음 프라이스의 논문을 받고 당황해 합격시켜야 할지 말지 심사위원들 간에도 논쟁이 오고 갔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20여 년 전의 논문이라 해당 대학교에 직접 가지 않으면 프라이스의 논문은 접해볼 수 없다. 그러나 다행히도 practice-based art research를 주제로 한 편저에서 프라이스의 논문 일부****를 수록하였다.
프라이스는 1996년부터 우리가 흔히 ‘박스 테이프’이라고 부르는 옅은 브라운 색의 포장 테이프를 뜯어 구(sphere)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눈을 작게 뭉친 후 계속 굴리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boulder (둥근돌)이라고 불렀다. 1997년부터 이 작업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도 이 반복 작업은 계속되었다고 했다. 포장 테이프를 뜯어 표면에 계속 붙여 나가 바위만큼 큰 구를 만드는 이 노동 집약적 단순 반복 작업으로 박사 논문을 쓰다니.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일반적인 크기의 문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큰 바위만 한 덩어리를 완성했다. 그리고 작업 과정의 세심한 묘사뿐 아니라 연구자가 작업을 통해 발견한 생각을 기반으로 논문을 작성했다. 기포 없이 완벽하게 표면에 테이프를 부착하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체득된 양 팔의 놀림과 손의 힘주기 기술, 테이프의 물질성, 작품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무게, 길이, 폭, 작업자의 노동시간 등—이 어떤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지, 작업자가 기록한 텍스트의 효용 가치, 박스 테이프의 일반적 사용에 내포된 오브젝트 간의 위계성, 테이프 자체의 비자주적 가치 등을 써내려 간 문장 하나하나를 읽다 보면 그녀의 통찰력에 기가 막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 이후 그녀에게 홀딱 반해 버렸고, 힘들 때면 그녀의 글을 다시 꺼내 보았다. 연구의 성격도 다르고, 따라서 쓰고 싶어도 못 쓸 실력이지만 그녀의 글은 읽을 때마다 나에게 무언가 설렘을 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2012년 영국 터너 프라이즈를 수상하며 스타 아티스트가 되었다.
에코와 프라이스의 글을 통해 작품논문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나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작품논문은 연구자 중심이다.
앞서 에코와 프라이스 모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논지를 펼쳐 나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구자가 구현하는 작업이 연구의 중심이기 때문에 연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현재까지 발표된 국내 작품논문 (내 전공분야인 패션디자인에 한함)에서 연구자가 강하게 engaging 한 논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느 다른 분야의 학술 중심 연구 (theoretical based research) 형식 및 방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론적 고찰 후, 선정한 연구 방법론에 따라 관련 사례나 이론을 분석하고, 분석결과에 맞추어 작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순서를 충실히 따르는 연구의 흐름은 논리적이다. 바로 이 논리적인 흐름이 연구자 중심의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 장애가 된다. 이를 지키려고 하다 보니, 작품을 일단 만들고 나서 이론적 고찰과 분석 내용에 작품을 끼워 맞추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면, 지도교수도 잘 끼워 맞출 수 있도록 도움 주는 수 밖에는 방도가 없다. 이 부분에서 내가 많이 힘이 빠졌었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논문 수업을 매 학기 지도하면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리서치 저널 쓰기'이다. 지도교수인 클레어가 추천한 방법으로 나는 매일매일 작업한 과정에 따른 경험과 함께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생각까지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 리서치 일기 자체를 연구 방법으로 채택하여 논문에 적극 활용하였고, 심사위원들은 작품 논문의 연구 방법으로 좋은 사례라고 자신의 지도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하겠다고 하였다.
리서치 저널을 쓰면 연구의 초점이 작품을 구현한 연구자로 향하게 된다. 이런 분석 결과를 적용해 이러한 작품을 만들었다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작품을 내놓게 된 배경 및 과정,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자기 평가가 논의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논문의 심도는 깊어질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둘째, 지도교수와 연구자 모두 작품이 지닌 모호성을 인정해야 한다.
종종 지도학생들은 자신의 작업 과정이나 결과물이 앞서 도출한 분석결과와 맞지 않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고민 섞인 질문을 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고민 그대로 솔직하게 논문에 쓰라고 한다. 억지로 끼워 맞춘 글은 누가 봐도 어색할 뿐이다.
논문의 조건 중 하나는 제삼자가 똑같은 연구 대상과 조건 및 방법으로 연구를 다시 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이른바 '논리적 타당성 및 신뢰성 확보'가 있다. 그러나 작품논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무 나간 것 아닌가 싶긴 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모순 덩어리 그 자체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작업이 어떻게 앞뒤가 딱 맞게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있겠는가. 작품은 수학이 아니다. 예술가가 이 작품이 가진 의미는 무엇입니다라고 명확히 말하지 않으면 관중은 저마다 주관적인 해석을 할 자유가 있다. 프라이스의 박스테이프 바위를 보고, 이게 무슨 예술이냐 이걸로 박사학위를 따다니.라고 해도 프라이스는 이 사람을 설득할 의무도 필요도 없다.
창의적 작업은 당연히 모호성을 지닌다. 그래서 매력적인 거고, 다양한 함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업을 가지고 논리적인 글을 써야 학위를 주겠다니. 딜레마다. 이 딜레마 안에서 합의를 봐야 한다. 기존의 작품 논문 형태로는 절대로 창의적인 작품이 나올 수 없다. 패션 디자인 작품 논문을 보면 대부분 이론적 고찰과 학술적 분석결과는 우수한데, 작업 결과물이 아쉬운 경우가 많다. 앞서 도출한 분석 결과가 실험적인 작업 과정을 가로막고,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분석 결과대로 만들기만 하면 돼.라고 딱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패션이라는 분야는 문화적 산물이기도 하고, 예술이 되기도 하며,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은 후까지 우리 몸에 걸치는 오브젝트이기도 하다. 이렇게나 재미있는 분야를 학술 논문의 틀에 맞추니 재미있는 작업물이 나올 리가 없다.
따라서 좀 더 자유로운 구성 및 형식을 허해야 한다. 작품논문에서 굳이 이론적 고찰을 먼저 수행할 필요가 있는가. 일단 뭘 만들어 보고 나서 그에 따른 이론이나 다른 사례를 고찰하면서 다음 작업 단계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작품논문의 목표가 최종 완성물이 아니라 완성물을 향해 가는 작업 과정에 대한 성찰이 될 수도 있다. 내 지도학생들에게는 앞서 기술한 내용들을 얘기하면서 좀 더 재미있게 해 보자고 다독인다. 그런데 학생도 쉽지 않나 보다. 아무래도 기존에 발표된 논문들을 많이 읽다 보니 다르게 시도하기 겁이 날 것이다. 학생들이 창의적인 통찰력을 펼쳐 나갈 수 있도록 더 끊임없이 독려해 주어야 하겠다.
Notes
*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1932-2016, 이탈리안 기호학자, 미학자, 소설가, 역사학자, 철학자
** 조앤 엔트위슬, Joanne Entwistle, 영국 문화학 및 미학자
*** 엘리자베스 프라이스, Elizabeth Price, 1966- , 영국 아티스트, 2012년 터너 프라이즈 수상
**** Price, E. (2000), Sidekick, (In) Macleod, K. & Holdridge, L. (eds.). (2006) Thinking Through Art: Reflection on art as research, London: Routledge. p. 12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