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매 학기 논문 연구방법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내가 지도하는 대학원생들의 연구 분야는 크게 패션 디자인과 패션 비즈니스 분야로 나뉘어 있다. 패션 디자인 분야는 작품 컬렉션 분석을 바탕으로 한 사례연구, 다른 분야와의 융합 관련 연구 또는 작품 연구를 진행한다. 패션 비즈니스 분야는 최근 패션 산업 동향에 따른 이론 및 사례연구나 개별 프로젝트 진행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처음 논문을 접해 보는 석사생들이 수강하는 수업이기 때문에 논문이란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서, 학회지 투고를 위한 소논문 완성이나 졸업 심사를 위한 논문 준비를 위한 개별 지도를 수행한다.
개별 지도를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매주 수업 내용은 전적으로 학생의 연구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대부분의 연구 진행 상황이 매주 꾸준히 발전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누구든 반드시 연구 과정 중 길을 잃는다. 그럴 때 같이 고민하며 해결 방안을 논의해 연구가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가 논문 수업에서 주로 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는 논문 연구 수업 경험을 토대로 성공적인 논문 완성을 위하여 반드시 알아야 할 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마도 패션 분야뿐 아니라 다른 전공 분야와 관련한 학술 논문을 작성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 논문이란
학술 논문은 영문으로 Theoretical-based research이다. 용어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연구로, 선정한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다른 연구자들이 먼저 연구한 업적들을 고찰하고, 연구자만의 연구 방법을 통해 설정한 연구 문제에 대한 해답이나, 연구 가설을 지지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구체적인 연구 주제를 설정하고, 관련 자료들을 수집 후 정리한다. 그리고 이 자료들을 설정한 연구 방법에 따라 재검토/재고찰/재분석을 통하여 이전의 선행 연구 자료들과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기존 연구의 보완/수정/때로는 전복을 통한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논리적으로 구성되어 독자들을 이해시켜 설득하게 하는 힘을 지녀야 논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할 수 있겠다.
논문이 지녀야 할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크게 독창성(originality), 정확성(accuracy), morality(윤리성), 그리고 평이성(readability)이 있을 수 있겠다. 이 조건들은 아래 항목에 대입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2. 연구 주제 선정
보통 첫 수업일에는 강의 개요와 논문의 개념 정도 소개를 한 후, 학생들에게 다음 수업시간까지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선정해서 연구명을 정해 오라고 한다. 이 때 대부분은 큰 포부가 엿보이는 연구명을 가지고 온다. 예를 들면,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 방향'이라던가, '예술과 패션의 상호관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패션 마케팅 전략' 등이다. 그럼 이제부터 학생과 나와의 Q&A 시간이 시작된다.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 방향'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어느 시대의 한국 패션 산업을 말하는지? 여기에서 말하는 한국 패션 산업은 패션 브랜드를 의미하는지?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패션 유통 산업을 가리키는지? 발전이라는 용어는 어떤 측면에서의 발전을 의미하는지? 경제적 수익 창출인지? 마케팅 전략적 발전인지? 글로벌화를 위한 발전인지?
학생들은 대부분 '음.....', '아직 정확하게 정한 건 아니고요....'등 난감한 표정으로 답한다. 나는 학생과의 Q&A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말꼬리 붙잡고 꼬치꼬치 캐물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학생이 가지고 있는 희미한 계획을 뒤덮고 있는 안개를 걷고 끄집어내어서 그래서 무엇을 연구하려고 하는지 구체적으로 다듬어가려면 꼭 필요한 단계이다.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다면, 연구 주제는 어느 정도 구체화됐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좋은 연구명은 그 안에 연구 대상과 기준 및 방법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 패션 산업의 발전 방향 '에서 '한국 신진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전략 연구 - OOO브랜드 사례를 중심으로-'로 구체화시켰다고 가정해 보자. 연구 대상: 한국 신진 패션 브랜드 / 연구 기준: 글로벌 진출 전략 / 연구 도구 및 방법: OOO브랜드 사례 연구, 사례연구를 통한 전략 도출, 이렇게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전의 제목보다 훨씬 명확하지 않은가. 따라서 구체적이고 명확한 연구 주제를 설정하기 위해서 자신이 자신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던져보자. 너 대체 그래서 뭘 하겠다는 거야? 이런 심정으로 자신을 캐묻는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설정한 연구 주제가 이전에 다른 연구자가 이미 수행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아무도 하지 않은 연구 분야는 없다고 봐야 한다. 정말 아무도 하지 않은 연구 주제가 있다면, 그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거나, 유의미한 연구 결과를 도출해 낼 가능성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선행 연구들을 찾아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연구 주제를 누군가 이미 했는지, 그리고 비슷한 연구가 있다면 나는 어떻게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지 고려해 봐야 한다. 이 부분은 논문의 초록만 읽어봐도 알 수 있으므로 어렵지 않다. 그리고 연구를 시작하고 진행된 후에도 관련한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지 않았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3. 연구 방법 설정
연구 방법 설정은 논문을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많은 고민을 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연구의 독창성과 타당성 및 정확성을 평가받는 데에 있어서 연구 방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선행 연구와 차별화한 연구 방법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 문제에 접근했다면 독창적인 연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는 또 다른 말로, 기존의 자료에 대한 연구자의 새로운 시각 및 접근을 의미하기도 한다. 해당 연구의 방법론을 논하지 않는 논문, 기존의 선행 연구의 방법론을 연구자의 아무런 고찰이나 논의 없이 그대로 가져오는 논문은 '껍데기만 있는 연구'이다. 학회지 심사위원들이 주요 심사 항목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 연구 방법론에 대한 명확한 기술이다. 특히 질적 연구방법을 활용하는 연구들이 서론에서 문헌 조사와 사례조사, 인터뷰 조사 등을 통한 연구를 진행한다고 간략히 쓰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연구 분석방법의 틀을 정립하고, 연구 방법에 따른 도구 선정 절차를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또한 선행연구의 연구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와도 무방하다. 다만, 본 연구에서 선행연구의 그것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타당하게 규명해야 한다. 두 개 이상의 선행연구의 연구방법론들을 참고하여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창조해 내는 것은 더없이 좋다.
정립한 연구 방법에 따라 연구를 진행해보니, 연구 방법에 따라 수행해야 할 연구 내용이 도출되지 않을 가능성은 물론 있다. 이럴 경우 대부분 좌절한다. 그동안 찾아본 수많은 선행연구들을 읽고 분석해서 만들어 낸 연구방법론인데, 적용해 보니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면 식은땀이 확 나는 게 당연하다. 나도 물론 이런 경험이 있다.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에는 눈물이 찔끔 나긴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며칠쯤은 좌절해도 괜찮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더 찾아보고 분석해 보면 내 연구에 찰떡같은 연구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 쉽게 술술 써지면 그게 논문이겠는가.
4. 글쓰기 및 퇴고
선행연구 현황 파악, 목차 구성, 사례 선정 기준 등의 그 밖의 주요 항목들이 연구 주제 설정과 연구방법론 정립과 함께 어느 정도 결정이 되었다면, 이제 쓰면 된다.
논문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이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학생들이 언제 이렇게 논리적 흐름에 맞춘 글을 써 봤겠는가. 아마 고등학교 때 대입 논술고사를 위해 학원을 다니면서 쓴 게 마지막 글쓰기 훈련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합격을 위해 예상 기출문제에 따라 글쓰기 테크닉을 익히는 것 중심으로 배웠을 것이다. 일상에서 글을 쓰는 건 카톡이나 SNS일 것이다. 여기에서 주어와 서술어가 포함된 온전한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이건 글쓰기라고 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첨삭하는 빨간펜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연구 흐름과 내용을 논의해야 하는데, 일단 문장을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안타깝다.
그러나 한 학기 동안 글쓰기 실력이 월등히 발전한 학생들을 봐왔다. 공통적으로 그들은 일단 많은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이 말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연구 진행이 잘 안되면 크게 좌절하고, 실력이 늘었다는 나의 한 마디에는 크게 기뻐했다. 그야말로 애증의 논문 쓰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내가 강력히 추천하는 방법 중 하나인 '소리 내어 읽기'를 실행했다. 집중해서 잘 써내려 갔다고 생각했던 글도 소리 내서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어색한 표현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글을 완성하고 나서 마지막에 반드시 소리 내서 읽어보기를 권한다.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꽤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잊어라'이다. 제출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는 힘든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써놓은 글을 저 멀리 던져두고 잠시 동안 잊는다. 그리고 다시 그 글을 읽어 보면, 수정이 필요한 글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지 않은가. 글쓰기 연습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잊고 있었을 뿐인데 다시 보니 다듬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다니. 이 방법 역시 어렵지 않고 효과적이다.
마지막 방법으로는 '초등학교 5,6학년과 중학교 1, 2학년 정도의 사촌 동생이나, 조카나, 혹은 친구의 아들딸과 친하게 지내라'이다. 흔히 논문은 연구자의 박식함을 드러내기 위한 전문적 지식을 담은 글로서,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만 접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논문은 비전공자의 독자들이 읽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명확한 서술과 평이한 문장으로 기술해야 한다. 그래서 서술 측면에서 논문이 지녀야 할 요건으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이 읽어도 이해가 가능함을 얘기하고 있다.
나에게는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의 조카가 있다. 작년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최종 제출한 논문을 읽으며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조카에게 논문 한 편을 주면서 "네가 읽어보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들 얘기해 줄래?"라고 했고, 조카는 흔쾌히 논문을 받아 읽기 시작했다. "이모, 이 부분 좀 말이 이상해~. (해당 문장을 소리 내어 읽음) 이게 뭔 말이야?" 급히 쓰느라 주어나 목적어가 생략되거나, 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을 조카는 정확히 짚어 나갔다. 초등학교 고학년한테 읽어보라는 게 진짜 효과가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로 나는 이 경험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추천하고 있다. 단, 초등학생의 집중력은 매우 짧다는 점을 명심하고, 정말 피드백이 필요한 부분만 요청하길 바란다. 또한, 자신의 자녀에게는 부탁하길 권하지 않는다. 서로 빈정이 상할 수 있으므로.
앞의 네 가지 항목을 보고, '하.. 논문은 쓸 게 못되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래도 피어리뷰(peer review)해 줄 동기와 지도교수님이 있지 않은가. 각자 연구 주제는 다르지만 동기와 함께 고통을 나누며 논문을 쓰는 경험은 나중에 추억이 되더라.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부럽다. 아무리 내가 논문 지도와 심사를 많이 해도,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듯 나도 내가 진행하는 연구들을 리뷰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교수님들 사정 뻔히 아는데 내 논문을 읽어달라고 부탁을 차마 드릴 수도 없고.. 교수님들끼리 서로 피어 리뷰(peer review)해주는 관례는 없나 보다. 그래서 나는 같이 읽어봐 줄 동기가 있는 학생들이 부럽다.
이왕이면 학생들이 고생해서 쓴 논문이 관련 학계나 업계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 연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내가 어쩔 수 없이 논문 수업에서 공격 모드가 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논문 심사를 '방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디펜스(defense)라고 부르지 않던가. 나는 공격하고 연구자는 내 공격을 방어함으로써 자신의 연구가 지닌 논리성/타당성/신뢰성을 설득시켜야 한다. 학생들이 써 온 논문을 읽고 코멘트를 덧붙이면서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문자는 '??'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라는 의미이다. 피드백을 끝내고 나면, 글자에 그어진 수많은 선들, 빨간색 글씨와 수많은 코멘트 말풍선들로 논문은 난장판이 되어 있다. 학생들은 가 보낸 피드백 파일을 열어보고, 분명 한숨을 내쉴 것이다. 스트레스 받겠지.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의 가혹한 공격을 받아 지금은 상처 받고 내가 재수없어도, 나중에 순간이나마 그 교수님때문에 글쓰는 법을 배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면, 난 더없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