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프린터가 참 신기하다. 종이에 잉크를 묻혀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 찍어 그려 준다니 말이다. 이런 나에게 빅데이터니 인공지능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 준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최신의 기술이나 제품들을 보면서 내가 드는 생각은 따로 있다. 돌도끼 만들어서 나무 자르고 사냥해서 생명을 이어가던 인간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도 열심히 연구하여 지금의 환경과 기술, 문화를 구현해 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별다른 재능도 업적도 없는 나는 왜 평생 공부하는 직업을 선택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를 선택하고, 수능은 문과로 변경해서 치렀다. 대학은 인문/자연계 통합이었으며, 석사와 박사는 굳이 따진다면 예체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하나 제대로 파고드는 거 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다녔던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 졸업 후 약 3년간의 회사 생활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공부하는 직업을 계속하고 있다. 슬프게도 머리가 좋지도 않고,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전공 분야의 특출 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를 믿어주고 지원해 주는 가족이 있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게 큰 요인이 되었겠다. 어쨌든 무엇이 나를 계속 공부하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공부를 통해 되고 싶은 내 모습은 있다.
공부하면서 어제보다 쌀 한 톨만큼이라도 나아진 나로 갱신하고 싶다.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 내가 아니라, 얻은 지식들을 연결하면서 다른 새로운 생각들을 만들어갈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를 통해 조금 더 용감한 나로 갱신하고 싶다. 용감해져서 어디에 쓰냐고?
적절한 방향으로 용감한 사람은 객관적, 창의적, 윤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관련 지식의 축적으로 인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들 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에 책임질 수 있을 전문성으로 무장하여 떳떳하게 용감해지고 싶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접하는 데에 열린 태도를 가지고,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연계하여 새로운 것을 상상해 내는 것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도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윤리 정신을 지녀야 한다. 자신이 타인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해서, 타인을 속이고 기만하며 이득을 취하는 사람은 되지 않고 싶다. 반대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주류에 휩쓸리면서 뒤에서 구시렁대는 나로도 남고 싶지 않다.
이런 것들이 갖춰진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큰 불안이나 두려움을 갖지 않는 단단함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단단한 나는 계속해서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게 할 것이다.
오래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이 내 적성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대학 때까지도 나는 앞에 나와 발표하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염소 목소리가 되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수업을 이끌다니, 처음 강의 시작할 때에 친구들은 말주변 없는 내가 어떻게 강의할지 궁금하다며 구경하러 오겠다고까지 했다.
공부를 하는 이유가 미래의 소중한 자산인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로 인하여 누군가가 긍정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받아 작게나마 그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 영광일 것이다. 나에게는 강의 역시 공부이다.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 책과 논문을 보고, 이해하기 쉽도록 사례를 서치 하고, 보기 좋게 자료를 만들며 적합한 과제를 부과하고 리뷰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강의를 위한 업무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강의를 핑계로 한 공부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지도뿐 아니다. 논문을 쓰려면, 작품 작업을 하려면 관련해서 공부해야 한다. 학과 일 역시 공부해야 한다. 재학생 현황과 학과 상황, 사회적 추세, 타 학교 현황까지 공부해야 한다. 모든 것이 공부인 것이다.
공부는 한편으로는 일종의 '유흥'이기도 하다. 심사할 논문이 쌓였을 때 잠깐씩 읽는 업무와 관련 없는 책 읽기는 달콤한 시간이다. 현업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실무 전문가 한 분은 매 학기 강의를 나가시는데, 업무가 끝나고 틈틈이 강의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시간이 일상에서 제일 큰 즐거움이라고 하셨다. 업무를 마치고 헐레벌떡 야간 수업에 오는 대학원생들은 초췌한 표정이지만, 두 눈은 반짝거린다. 익숙지 않은 일을 알아 나가고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그 어떤 것보다도 삶의 큰 활력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주는 유흥은 단순한 재미를 즐기며 깔깔대다가 끝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마치 힘든 운동을 할 때 발생하는 엔도르핀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이나 도취감을 의미하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처럼, 공부도 장벽과 스트레스가 있어야 비로소 공부를 즐길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압박도 없는 공부는 절대로 공부로 남을 수 없다.
그러니 과제를, 논문을, 또는 어떤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이 시작되면서 재미있었던 공부가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스트레스받지 말길 바란다. 지금은 건강한 나를 위하여 꽤 힘들게 달리는 것에 도전하고 있고, 이 달리기가 끝나면 내가 얻고자 했던 지식이나 역량의 근육이 더 단단해질 거라고 위로해보자.
또는 우리는 사실 태어난 후 계속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부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깨달았다면, 그것이 공부 아닌가. 그러니 인생에 있어서 어느 특정 기간 동안은 내가 의식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고 당당히 맞서 보자.
나의 가르치고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구성된 이 책은 공부하는 우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별할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 얘기들이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고민하며 좌절하며 어제보다 나은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