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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마 Oct 16. 2020

대학원생은 사서 고생한다

  

한 학기 동안 심사해야 할 논문의 일부. 




대학원은 매 학기 방학을 앞두고 논문 심사가 한창이다. 나 역시 지도학생 심사와 외부 심사들을 맡아 그즈음이면 집과 연구실에는 스프링 제본이 된 논문들을 쌓아두고 틈틈이 읽는다. 질문할 내용이나 의견, 오류 수정 등을 메모해 붙일 포스트잇이 넉넉하게 있는지 체크도 미리 해야 한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심사를 앞둔 학생들의 몸과 정신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다. 그런데 심사를 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자기 논문만 보면 되지만, 나는 매 학기 적게는 5개 많게는 10개 이상의 다른 주제를 다룬 논문들을 읽어야 한다. 박사는 예심 포함 4회, 석사도 재심을 거치면 읽어야 할 논문은 수 십 권이 된다. 그것도 일반 책 읽듯이 하면 안 된다. 논문 구성은 적합한지, 연구 내용은 독창적인지, 연구 흐름은 논리적인지, 연구 방법은 타당하고 체계적인지, 참조와 인용이 신뢰할 수 있는지, 용어 사용은 적절한지 등을 고려해서 머리를 싸매고 본다. 이렇게 매 학기 적게는 논문 심사가 집중되는 3, 4주를 보내고 나면 입술에 포진이 나기 시작한다. 이건 몰랐다. 교수님들은 학생의 논문을 슥슥 넘겨 읽어보면 심사의견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심사 때 우아하게 지적해 주면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직 내 역량이 부족하다. 


요즘은 학부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아 대학원생의 연령대가 낮아진 편이지만, 그래도 4-50대 대학원생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분들을 보면 궁금해진다. 무엇이 공부를 시작할 용기를 주었는지. 더 배우고 싶어서, 학위가 필요해서, 쳇바퀴처럼 도는 지루한 직장 생활의 탈출구로써, 또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 지원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아무튼 의무 교육도 아니고, 높은 학비를 들여서 다니는 것이니 용기가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대학원생과 대학원의 상호 기대 관계다. 대학원생은 대학원이 자신의 역량을 드라마틱하게 개발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그런데 대학원이 대학원생에게 지원해 주는 것은 교학 시스템, 느슨한 교과과정, 그리고 바쁜 지도교수뿐이다. 이 지원 안에서 대학원생은 스스로 자기를 성장시킬 길을 찾아야 한다. 이 부분이 학사과정과 다른 점이다. 지도교수가 지도학생에게 아무것도 떠먹여 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더 배우고 싶어서' 입학했다는 대학원생들은 두 학기 정도 지나면 얘기한다. 대학원은 가르치는 게 없다고. 맞는 얘기다. 대학원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연구를 주도적으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정도만 하면 충분하다.


대학원생은 사서 고생하는 직업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일하는 대학원생의 경우 더 팍팍하다. 주로 야간 수업을 들으니, 헐레벌떡 저녁도 못 챙겨 먹고 오기 일쑤다. 그리고 개별 논문 피드백을 하려고 부르면, 최대한 천천히 의자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며 "최근 일이 바빠져 못했습니다 교수님.."이라고 말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근무하고 수업 시간 맞춰서 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사람한테 왜 과제를 안 했냐고 물을 수도 없다. 공부만 하던 나도 힘들었는데 일하면서 공부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은 생각에 "그래요..."라고 답한다. 뭐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뭐라 하지 않으면 배워가는 건 없고... 난감하다. 야간수업은 그래서 나도 어렵다. 


 코로나로 인하여 원격수업으로 진행되면서 야간 수업에는 종종 학생이 휴대폰으로 원격강의 룸에 접속해서 "교수님, 제가 지금 퇴근 중인데 30분 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집에 도착해 상기된 얼굴로 노트북 앞에 앉으면서 말을 꺼낸다. "교수님, 제가 오늘 회사에서 틈틈이 좀 써 봤는데요..." 하면서 공부해 온 얘기를 하려고 하면 복잡한 마음이다. 과제한다고 회사에서 얼마나 눈치 보며 썼을까 짠한 마음이 먼저 든다.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러운 생각도 든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신나서 열심히 피드백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열심히 한다고 석박사 학위를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위라는 것이 개인에게 있어 배움을 통해 자신이 성장했음을 인정받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교육기관이 학술적 또는 실무적 가치를 지닌 연구물임을 객관적이고 공적으로 인증하여 학계에 내보내는 무거운 책무의 산물이기도 하다. 여기에 나는 지도교수로서의 욕심을 더해 학생을 몰아치기도 한다. 학생이 힘들어하고 나면 확 발전되는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다. 나도 물론 그랬고. 그러니 나는 학생이 해낼 수 있음을 믿고, 학생은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다. 쓰다 보니 딴 얘기로 흘러간 듯 하지만, 아무튼 대학원생은 사서 고생하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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