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진흥센터에서 주최하는 한복 비즈니스 교육 프로그램에서 디자인 관련 강연을 했다. 지난해 누비 기법을 중심으로 전통복식을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고, 후에 생활한복 브랜드와 협업해 전시를 진행한 것이 강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 연락이 왔을 때에는 “한복은 제 전공분야가 아니라 한복 디자인과 관련해서 제가 말할 게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강연을 듣는 대상은 현재 한복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향후 관련 창업을 희망하는 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최 측에서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디자인 발상과 개발에 관련한 강의를 원한다는 응답이 많았다고 말씀하셨다. 디자인 리서치와 개발에 관련한 것이라면 학교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고, 내 작업이 전통 복식에서 출발하기도 해서 내 작업을 위주로 편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하기로 결정하였다.
강연 제목은 ‘전통 복식의 재해석: 디자인 발상과 재창조’로 지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계기로 평생 연구할 주제로서 누비를 택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전통 손누비를 배우고, 통영누비를 배우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결국 통영시청에까지 전화를 걸어 통영에 내려가 며칠간 누비를 배운 일, 생활한복 브랜드 대표님을 우연히 만나고 협업하기로 했으나 코로나가 들이닥쳐 전시가 미뤄진 것 등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들을 뉴욕 파슨스 스쿨의 피오나 디펜바허(Fiona Dieffenbacher) 패션 교수의 ‘디자인 사이클(The Design Cycle)’에 적용하여 컨셉, 아이디어, 디자인 항목 안에서 내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드리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문화유산의 하나인 한복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창의적 디자인 발상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문화적 지속가능성이라고 생각해 이 주제를 넣었다. 패션에서의 문화적 전유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17년 미국 보그 매거진에서 백인 모델을 일본 여성으로 분장하여 찍은 화보를 들 수 있다. 금발머리의 건강한 여성상을 대변하는 세계적인 슈퍼모델인 칼리 크로스(Karlie Kross)가 검은 머리에 얼굴을 노랗게 메이크업을 하고, 기모노를 입고 논란이 될 만한 무드의 화보를 찍은 것이다. 이후 후폭풍이 불었다. 세계 속의 당당한 여성을 지지한다는 주제 아래 찍은 화보인데 굳이 백인을 노랗게 분장시켜 동양여성을 표현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게다가 스모선수와 함께 모델을 세워 다소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찍은 이미지나 기모노가 금방이라도 어깨에서 흘러내릴 것 같은 포즈가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표현한 것이 맞는지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와 인터뷰 기사에서 비난을 쏟아냈다.
한복도 현재 아슬아슬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한류 바람이 불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사동, 삼청동, 경복궁 일대를 한복을 대여해 입고 다니는 외국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더운 여름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복을 착용하고 즐거워하며 다니는 모습이 귀엽고 고맙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프게도 조악한 옷들이 많다. 전통 문양에서 따와야 할 치맛단의 금박 무늬는 출처가 모호한 모양새에 금박이 벗겨져 보기 흉하다. 달항아리같이 우아한 볼륨의 치마 실루엣을 살려줄 용도로 착용하는 속치마는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꾀죄죄해진 치맛단이 훤히 드러난다. 물론 전통복식을 그대로 재현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많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대여해 주기엔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교토에서는 전통 기모노를 그대로 재현하여 관광객들에게 대여해 주고, 착용 방식과 착용 후 몸가짐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며 입혀준다고 한다. 가격은 한복 대여비용보다 훨씬 비싸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일본 전통을 배우고 경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게 하는 것이다.
얼마 전 K-Pop의 대표적인 주자 BTS와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와 공연에서 한복을 입어 화제가 되었다. 한복자락을 흩날리며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했다. 글로벌 팬들은 한복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블랙핑크가 입은 의상을 판매하는 사이트의 해외 소비자 방문자 수가 일주일 만에 2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블랙핑크가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와 공연에서 입은 한복 디자인에서 가져왔다는 크롭탑과 미니스커트를 비롯한 의상들을 두고 제각각의 의견들이 쏟아졌다. 한복을 가지고 배와 다리가 드러나는 옷으로 만들다니, 우리 전통 무늬와 색상 조합을 마구잡이로 해놓았다느니 하는 혹평이 나왔다. 이에 맞서 한복을 현 트렌드에 맞춰 재해석해 오히려 젊은 세대와 글로벌 팬들에게 한복을 알리지 않았느냐 는 우호적인 반응도 있었다. 어쨌든 국내외에서 이러한 관심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자체가 반갑지 않은가. 이렇게 한복에 대해 국내외로 뜨거운 관심을 받아보게 되다니 말이다.
문화적 지속가능성은 이것이다.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문화가 미래에 새로운 창의성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 이것이 문화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임무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우리 한복의 미래가 달렸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하여 한복의 조형적 특성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그 이면에 내포된 미적 특성과 가치까지 이해해야 함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마음이 이뻐야 진짜 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표면에 드러나는 아름다움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해 있는 의미와 가치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을 먼저 가슴으로 받아들이자.
*사진 출처: http://www.vogue.co.kr/2020/06/30/블랙핑크의-한복-의상/?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 @YG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