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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마 Dec 06. 2020

마르지엘라는 외계인이다


 

우아한 프라다. 우아한 샤넬. 깔끔한 마르지엘라.


창모의 '아름다워'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마르지엘라가 프라다와 샤넬만큼이나 대중들이 좋아하는 패션 브랜드이긴 한가 보다. 나는 저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르지엘라가 깔끔한가?'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깔끔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마르지엘라가 샤넬이나 프라다와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마르지엘라는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마르지엘라의 풀 네임은 마르탱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이다. 1957년에 태어나 벨기에 안트워프 왕립 예술 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하였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마 국적을 막론하고 자신이 생각해 낸 디자인 아이디어들 중 최소 한 가지 이상은 마르지엘라가 이미 과거에 했다는 것을 알고 풀이 죽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오호~ 이 아이디어 괜찮은데? 한 번 해볼까?'라고 생각하고 리서치를 하다 보면, 마르지엘라가 어디에선가 "내가 이미 했네, 이 사람아."하고 나타난다. 그만큼 디자이너로서의 삶 동안 대체 안 한 게 뭐가 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야 할 정도로 정말 많은 실험적 작업들을 했다.


지금도 나는 작업이 시원찮을 때, 재미없어졌을 때 마르지엘라 작업들을 찾아본다. 의상 자체뿐 아니라, 옷을 보여주는 방식, 의상 안에 내포된 의미 모두 마르지엘라는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마르지엘라 자신과 그의 컬렉션의 주요 키워드는 '익명성(anonymity)'이다. 그는 자신을 절대로 노출하지 않았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주로 자신들의 패션쇼 피날레 무대에 잠깐 등장해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는데, 그는 절대로 그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직접 인터뷰에 대응하지도 않았으며, 그의 사진은 더더욱 없다. 그게 더욱더 마르지엘라와 그의 브랜드를 신비롭게 만들어, 대중들의 호기심을 이끌었다. 이러한 익명성은 그의 컬렉션에서도 발현된다. 모델의 얼굴을 원단으로 가려, 의상에만 집중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 역시 모델의 눈을 검정색 직사각형으로 가렸다.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에서 등장인물들의 눈을 가린 게 딱 마르지엘라가 했던 그대로이다.


또한 브랜드 명이 써있어야 할 라벨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라벨의 네 모서리를 흰 실로 의상에 연결했다. 그래서 겉에서 보면 뒤 목 부근에 네 개의 흰색 스티치가 보이게 된다. 브랜드명으로 의상을 판단하는 기존 패션 시스템이 싫어 라벨에 브랜드명을 아예 넣지 않았다는 그의 의도는, 역설적이게도 겉에서만 봐도 "아, 저 사람 마르지엘라 입었구나"라고 알 수 있게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만의 차별화된 홍보 전략이 되어 버렸다.


그는 의상뿐 아니라 의상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도 독창적이었다. 우선 패션을 보여주는 공간부터 차별화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길에 버려진 가구들을 주워와 흰색 페인트로 칠하거나, 또는 흰색 면으로 둘러쌌다. 가구뿐 아니라 옷걸이며, 모니터며, 쇼룸과 사무실의 모든 물품이 온통 흰색이었다. 심지어 직원까지 흰색 가운을 입혔다. 이것은 후에 패션뿐 아니라 예술, 건축,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인스퍼레이션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패션 브랜드들이 너도 나도 하고 있는 패션필름은 이미 그가 27년 전에 만들었다. 힙하다는 브랜드들이 전형적인 패션쇼를 위해 지어진 공간이 아닌 창고나 주차장에서 쇼를 진행하는 트렌드는, 브랜드 초기부터 극장, 파리 외곽, 주차장, 지하철, 차고, 다리 아래에서까지 쇼를 해 본 그를 따라올 수 없다. 2014년 설립한 패션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이 길에 지나가는 행인들을 무작정 캐스팅해 쇼에 세운 것 역시 마르지엘라가 이미 했던 것이다.


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관점에서 본 마르지엘라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요즘 내가 다시금 마르지엘라가 대단하다고 느끼게 된 작업은 그의 컬렉션 '0'번에 해당하는 '공예적 컬렉션(Artisanal collection)'이다. 군용 양말로만 활용하여 스웨터를 만들고, 깨진 도자기 접시, 비닐봉지, 또는 가죽 장갑으로만 의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빈티지 의상들을 활용하여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최근 지속 가능한 패션 디자인의 대표적 방법으로 떠오른 '업사이클링 패션(up-cycling fahion)'을 30년 전에 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이쯤 되면 내가 마르지엘라를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만하지 않은가.



그런 마르지엘라도 패션을 보여주는 것이 우주처럼 막막했다고 하였다.


지난가을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Margiela: in his own words>에서 그는 평범한 중년 아저씨의 음성으로 지난날의 작업들이 막막했었노라고 회고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에 학교 선배가 말하기를, 디자이너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별 일 아니라는 듯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그 뒤에서는 수면 아래의 백조의 바쁜 발처럼 치열하게 작업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어느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결과물만 보고 대단하군, 타고났다, 천재네.라고 쉽게 말한다. 심지어 나는 마르지엘라가 외계인이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좌절과 괴로움, 희생을 감수하면서 치열하게 버티고 결과물을 힘겹게 끄집어내는 과정이 있었음을 우주처럼 막막했다고 나지막하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도 나와 같은 인간임을 보여주었다.


마르지엘라는 2008년 마지막 컬렉션 쇼를 뒤로 하고 패션계를 완전히 떠났다. 뭐하고 지내시나요, 마르지엘라 아저씨. 그래도 여전히 저는 아저씨가 외계인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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