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 한 벌, 검은색 후디 하나,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 하나. 올해 내가 구매한 옷이라고는 이게 전부다.
코로나의 영향이 크긴 했다. 강의는 집에서 원격수업으로 이루어지니 상의만 잘 챙겨 입으면 되고, 하의는 무조건 편한 바지로 입는다. 급한 회의엔 파자마 바지 그대로 입기도 했다. 이때 잠시 자리를 떠야 한다면, 벌떡 일어나지 않고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옆으로 엉거주춤 게걸음으로 걸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재택근무로 인한 원격 미팅이 급증함에 따라 패션 브랜드들이 상의 제품 출시에 집중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프라다는 프라다의 역삼각형 로고를 몸판 중앙에 크게 부착한 상의 아이템을 내놓았다. 그동안의 프라다의 로고는 소매 옆쪽, 또는 왼쪽 가슴 위쪽에 작게 올려져 있었는데, 원격으로는 잘 안보일 테니 시원하게(?) "나 프라다 입었다!"라고 보여줄 수 있도록 말이다.
코로나로 인한 패션 소비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는 보고서나 아티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원마일 웨어(One-mile wear)로 불리는 동네 편의점 정도까지는 입고 나가도 부끄럽지 않은 라운지 웨어가 머스트 해브(must-have) 아이템이 되었다. 그 밖에도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하이퀄리티의 패션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또는 그와 반대로 브랜드와 관계없이 가성비에 집중한 아이템 구매로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염려증은 웰빙으로 이어지고, 이는 지속 가능한 패션으로 연결되어 지속가능성에 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 크게 증가하였다.
코로나로 인한 나의 패션 소비 행동은 '소비의 최소화'가 되었다. 가지고 있는 옷만으로도 충분히 한 계절을 날 수 있을뿐더러, 클래식한 디자인들이라 몇 년은 더 입을 수 있는 옷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예전부터 이러한 스타일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석사 때에는 런던의 빈티지 매장에서 산 꽃무늬 벨벳 드레스에 보라색 스웨이드 롱부츠에 찢어진 스타킹을 신기도 하였다. 헤롯 백화점이 세일을 시작하는 날엔 오전부터 줄을 서 있을 정도로 쇼핑을 좋아했다. 그때 옷과 가방, 신발에 쓴 돈을 생각하면 눈물 나게 아깝지만, 한창 외모에 관심 있을 때인 어렸을 때 반짝하고 말았으니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옷차림새는 박사를 시작하고 슬슬 중압감이 시작되면서 또 한 번 변했다. 등교해서 하루 종일 연구실에 앉아있거나 작품을 제작해야 하니 외모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편안한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 운동화에 백팩이 어느샌가 나의 등교 룩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자려고 누웠더니 두 무릎이 욱신욱신 아팠는데, 그게 꽉 끼는 스키니진을 입고 하루 종일 앉아있어 무릎에 무리가 간 것을 깨닫고 난 뒤였다. 외모나 옷차림새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학교 내 분위기도 한 몫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다들 신경 써서 입고 오니 나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영국에서는 아무도 남의 외모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도 않으며, 다들 제 멋대로 입고 몇 주씩 같은 옷도 입고 오니 참 편했다.
그런 내가 박사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 곧바로 학교로 오게 되니, 가장 난감한 게 내 옷차림이었다. 나이가 드신 교수님들은 캐주얼하게 입으시면 멋져 보이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고 또 차려입으면 내가 불편하고.. 지금은 적당히 단정하고 적당히 편안하게 입고 있다.
아무튼 지금의 나는 내 패션에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내 패션에 관심 없는 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좋다. 내 패션에는 관심 없지만, 타인의 패션은, 지금 패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변화할지, 다른 분야와 어떻게 관계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 비록 패테(패션 테러리스트)라 불리고 있지만, 나의 머리와 마음은 패션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사진: Prada 2021 fw @Prada. https://www.prada.com/ww/en/pradasphere/fashion-shows/2021/ss-womenswear.html?pag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