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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대의 어른이 아닌,어린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60대, 삶을 돌아보며 다시 찾는 순수함과 여유

by 김종섭
⑬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것도 하루아침에 눈을 뜨면 갑자기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랐다.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은 끝도 없었고, 책임감은 무거웠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60이 되었다.


이제는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차라리 빨리 늙어버리든가, 아니면 다시 어린아이가 되고 싶다. 사실 요즘은 왠지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몸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다. 생생했던 추억들이 하나둘 희미해지고, 젊은 날 그렇게도 많은 생각에 스스로를 지치게 했던 마음이 이제는 이상하게도 편안하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는 늘 불안했다. 크고 화려한 꿈을 좇아 바쁘게 달려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는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하고, 소소한 것에서 기쁨을 찾는다. 그렇다고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화려했던 꿈이 소박한 바람으로 변했을 뿐. 바쁘지 않게,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꿈을 꾸고 싶다.

젊을 때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시간은 전쟁터에서 실탄과도 같은 존재라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약이 되어 정말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 애써 감추고 버텨왔던 감정도, 너무나 애를 썼던 지나간 순간들도, 결국에는 세월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60이 넘으면 과거를 자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문득 후회가 밀려온다.
"그때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이 길이 아니라 저 길을 선택했으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었을까?"
"이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 난 어땠을까?"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소중히 여겼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는 또 다른 나를 만나게 했다. 이미 지나간 것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살아갈 수는 있다.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고민할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켜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남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을 의식하는 삶이 익숙하다 보니, 때때로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서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요즘은 망설이는 횟수가 늘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해도 될까?"라는 물음표가 더 많아졌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다. 조금 늦게 시작해도,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가끔은 최면을 걸어본다.


60이 지나고 나니,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가족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내 경험과 지혜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결국 인생의 의미는 나누는 것에서 온다. 이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채울 것인지 고민할 때다.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나의 이야기, 내가 배운 것, 내가 남길 수 있는 따뜻한 흔적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자잘한 것에도 웃음이 나고, 소소한 일에도 감동을 받는다. 거창한 꿈보다, 그저 하루를 소소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오늘 하루가 만족스러우면 충분하다."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 될 거라는 것.


나는 이 시대의 어른이 아닌, 여전히 세상을 배우는 어린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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