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함을 지나, 새로운 시작을 향해
⑫ 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습니다
퇴직을 하면 모든 것이 자유로울 줄 알았다. 더 이상 출근 시간에 쫓길 일도 없고, 통료를 챙기지 않아도 되고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하루의 일과를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기대했던 것과는 현실은 조금 달랐다.
한동안 밤과 낮이 뒤바뀌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때문이었다. 생활이 불규칙해졌고, 소파에 앉기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점점 시간 개념이 희미해졌고,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나 퇴직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항시 머릿속에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그중 가장 큰 질문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였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처음에는 마치 오랜 방학을 얻은 기분이었다. 끝이 아니라, 잠시 직장의 틀에서 벗어난 긴 휴가 같았다.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유가 구속처럼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날 이유가 없으니 늑장을 부리며 시간을 보내고, 평일과 주말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갔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바깥나들이가 점점 어색해졌고, 혼자가 편하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았다. 초점을 잃은 눈, 생기를 잃은 얼굴. 출근하던 시절 거울을 보며 단정하게 가꿨던 내 모습과는 너무 달라져 있었다. 문득 "사람의 얼굴은 생활을 반영한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소리 없는 외침이 들려왔다.
"이제 나의 삶을 어떻게 채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퇴직 후 찾아온 막막함과 자신감의 소멸, 그 원인은 단 하나였다.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에 다닐 때는 목표가 있었다. 업무 성과를 내야 했고,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퇴직 후에는 그런 절대적인 목표가 사라졌다. 목표 없는 삶은 방향을 잃은 배와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졌다.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러나 질문을 던질수록 막막함만 커졌다.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은 있었지만, 그것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주눅 들게 했다. 퇴직 후 얻은 자유는 오히려 무거운 책임감이 되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던 중,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즐겁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불안감이 줄어들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차분해져 갔다.
나는 브런치에서 7년 동안 글을 써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느꼈고,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퇴직 후에도 계속해서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글을 쓰면서 나만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이 시대의 어른이 되었습니다"라는 주제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 글을 통해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퇴직 후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정해주지 않았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이제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자율성은 어떤 자유보다 무겁다는 것을 실감했다.
혼자의 판단만으로 길을 결정해야 하기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내 자신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목표가 사라졌다면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가면 된다. 나는 글을 통해 나의 새로운 방향을 찾기로 했다.
퇴직 후의 삶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내 삶을 내가 설계해야 하는 시기다. 이전의 삶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지만, 나에게는 아직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성장할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그 다짐을 되새기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 나의 삶의 흔적을 남긴다.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기록이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여정은 끝이 아니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자,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않겠다.
다음 단원에서도 다시 도전하며 나아갈 것이다. 이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