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하는 생명들 속에 숨어 있는 약육강식의 진실
아침 일찍부터 창밖에서는 새들의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3월이 되면서 바깥공기도 한층 더 부드러워졌다. 오늘은 모처럼 지인과 점심을 함께한 뒤, 식당 주변 공원에 들러 호숫가를 한 바퀴 걸었다.
공원을 걷다 보니 겨울의 묵직한 기운이 서서히 걷히고, 봄의 싱그러운 온기가 스며든다. 캐나다는 어디를 가든 걷기 좋은 공원과 호수가 있어, 발걸음만으로도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오늘 찾은 공원도 가끔 출퇴근길에 걸어서 지나던 익숙한 곳. 오랜만에 다시 걸어보니, 그때의 풍경과 공기가 문득 떠오르며 한층 더 정겹게 느껴진다.
호수 주변을 걷다 보니 한 그루의 나무가 마치 도끼로 찍힌 듯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순간, 누군가 일부러 베어낸 건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지인은 뜻밖에도 이것은 수달의 소행이라고 했다. 이빨로 나무를 갉아 쓰러뜨렸다는 것인데, 그 모습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단단한 나무를 오로지 이빨로만 갉아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그 작은 생명의 강력한 힘에 어딘지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호숫가의 고요한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칠고 원초적인 생명력의 흔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호수 주변 대부분의 나무들은 수달의 공격을 받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조각품을 만들다 만 세월이 지난 나무 조각처럼 보였다. 물론 산짐승들이 이갈이를 할 때 나무를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지만, 이 정도로 철저하게 나무를 갉아 절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호수 주변의 나무들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수달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흔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은 자연의 잔잔함 속에서 작은 생명력의 강렬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수달이 얼마 전 갉아 놓은 나무는 밑동만 남아 있다. 누가 보아도 사람이 도끼로 찍은 듯한 소행처럼 보인다. 주변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많은 나무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밑동만 남은 채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이 나무들은 수달의 집요한 공격을 견디다 못해 고요한 호숫가에 무참히 생명을 잃은 듯 보였다.
수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철조망으로 나무 보호에 들어간 곳도 한두 그루가 아니다. 호수, 나무, 들풀, 모든 자연이 함께 공유하는 이 호수에서 수달은 절대적인 무법자처럼 행동한다. 물속에는 물고기가 수난을 당하고, 작은 호수 내에서는 수달로 인한 수난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었다. 자연의 균형을 깨는 수달의 행동은 이곳의 생태계를 점차 위협하고 있었다.
호수 한쪽 편에는 수달이 사는 집이 있다. 주변 나무를 물고 와 성처럼 거대한 집을 만들어 놓았다. 마치 수달의 성지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수달의 서식지가 호수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지만, 캐나다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강한 보호 개념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조치는 없는 듯하다. 자연의 일부로 여겨지는 수달이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그 흐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의 균형을 깨는 수달의 행동 앞에서, 그것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봄이면 내가 살고 있는 집 베란다 기둥에도 딱따구리가 산란을 위해 기둥을 마구 쪼아 대어 구멍 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기둥을 보호하기 위해 이곳 역시 철조망으로 둘러 차단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해마다 봄이면 딱따구리와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딱따구리는 기둥에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곳이 자신의 터전이라고 생각하고, 끝없이 기둥에 집을 만들기 위해 쫓아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둥에 손상을 입히게 된다. 수시로 날아와 기둥을 쫓아대는 소리를 듣고 창가로 다가서려 하면, 이미 인기척을 알아채고 날아가 버린다. 그때마다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청각 능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숲이며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힘차게 태동한다. 땅에서 솟아나는 이름 모를 들꽃들도 그 대열에 가세하고, 삶을 위한 태동은 강력하다. 수달이나 딱따구리 또한 자기들 나름의 삶의 방식을 가진 행동일 텐데, 왠지 시선이 아름답지 않다. 사람뿐 아니라, 약육강식이 어쩌면 자연의 질서처럼 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약한 것에 동정심보다는 강한 자의 독주가 두드러지는 이 자연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강한 쪽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