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지중해 숨겨진 보석, 마그랄리 만에서 카쉬까지

남부 해안에서, 동해 바다에서 회를 먹던 순간들을 떠올리다

by 김종섭

튀르키예 남부 해안을 따라 달리는 길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 위로 차창 너머 펼쳐지는 지중해의 푸른 바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흐려질 정도로 맑은 물빛, 시원한 바닷바람, 가끔씩 모습을 드러내는 아담한 해변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오늘의 첫 목적지였던 피니케 마그랄리 만(Finike Mağaralı Koyu)은 유독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다.

안탈리아 숙소에서 이른 아침 7시에 조식을 마치고 8시경 출발해 약 120km를 달려 도착한 마그랄리 만은, 관광 안내판 하나 없이 도로 아래로 내려가야 닿을 수 있는 숨겨진 해변이었다. 따로 주차장도 없어 도로 옆에 차를 세워야 했다. 이 풍경은 문득 한국 동해 바다의 조용한 포구를 떠올리게 했고, 예전 가족들과 동해 바닷가에서 회를 먹던 추억도 되살아났다.


파라솔 하나 없이 맨바닥에 앉아, 포장된 광어회 한 접시에 초장을 풀고 소주 한잔 기울이던 그 시간. 해풍에 머리가 헝클어져도 그저 좋았던 순간. 오늘 이렇게 이국의 지중해 해안에서, 한국 해안의 정서가 떠오른 건 어쩌면 마음이 그리움에 닿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해변은 흔한 모래사장이 아니라, 하얀 자갈로 덮여 있었다. 도착했을 땐 몇몇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고, 나는 허리 정도까지만 물에 들어갔다. 팔 부상으로 깊이 들어가진 못했지만, 수영복에 물안경, 아쿠아슈즈까지 바캉스 복장을 완비하고 물가에 서 있기만 해도 충분히 행복했다.


이곳은 아들과 며느리가 작년 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아들이 인상 깊게 기억해 두었다가 이번 여행지로 추천해 준 덕분에 오게 되었다.


강한 햇살을 피할 그늘 하나 없던 해변에서 나는 바위 사이 자연 동굴로 잠시 몸을 옮겼다. 바위틈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물 위에서 반짝이는 그 풍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동굴 안의 정적 속에서 도심의 소음을 잊고 온전한 ‘쉼’을 누릴 수 있었다. 편의시설 하나 없는 그곳에는 파도 소리, 그리고 우리만의 시간이 조용히 흘렀다.


그 순간, 이런 곳에서 회 한 접시 펼쳐 놓고 아니면 불판에 삼겹살을 올려 놓고 소주 한잔 곁들이면 얼마나 완벽할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현실은 여행 중이라 먹다 남은 위스키 한잔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마그랄리 만을 뒤로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약 69km 떨어진 항구 도시 카쉬(Kaş).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또다시 감탄을 자아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길 위에서 바라본 물빛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투명했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멀고 아득하게 흘러갔다.

카쉬는 대형 리조트도, 유명 브랜드도 없는 조용한 작은 마을 같은 항구 도시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민박 숙소를 예약했는데, 숙소에서 바다까지 도보 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였다. 짐을 풀자마자 밖으로 나섰고, 숙소 앞 시장 골목을 지나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정겹고 활기찼다.

우리는 도시 언덕 위에 자리한 고대 경기장 안티페일로스 극장(Antiphellos Theatre)으로 향했다. 돌로 지어진 객석 끝에 앉자 지중해가 시원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예전 로마 여행에서 보았던 콜로세움이 떠오를 만큼 비슷한 구조였고, 무대와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드문 풍경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무대 같았다. 그 자리에서 조용한 나만의 공연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극장에서 내려오는 길에 아들이 이 지역에서 유명하다는 카페로 안내했다.아들은 '크나페(Künefe)’라는 디저트를 주문했다. 바삭한 카다이프 안에 치즈를 넣어 구운 후, 설탕 시럽과 피스타치오를 뿌린 디저트였고, 터키식 홍차 차이(çay)와 함께 먹으니 온몸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숙소로 돌아와 잠깐 눈을 붙였는데, 피로가 누적되어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밤 8시가 넘은 시각. 급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아들이 예전에 방문했던 식당을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폐업한 상태였고 자리는 공터로 남아 있었다. 대신 좁은 골목 안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가 샥슈카(Şakşuka), 알리 나지크(Ali Nazik), 감자 계란 샐러드를 주문했다. 익숙하지 않은 향신료와 재료였지만, 신선함 덕분에 새로운 미각의 경험으로 다가왔다.

카쉬에서의 하루는 바다와 햇살, 그리고 바다 향기가 어우러진 조용하고 깊은 시간이었다. 마그랄리 만은 마음속 깊이 간직될 지중해의 비밀 같은 것이 숨어 있었다.


여행은 결국 풍경을 보러 떠나는 길이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함께한 식사, 그리고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더 오랫동안 기억된다. 오늘의 여행도 그러했다.


*여행기록 2025.5.12*마그랄리 만-*카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