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 명이 지하 85미터에서 살아낸 생존의 흔적, 11일 오전 여행기록
새벽 4시 반.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간, 이슬람 사원의 첨탑에서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에 잠에서 깼다. 종교를 믿지 않는 나로서는 누군가의 하루를 성스럽게 여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소중한 잠을 깨운다는 불편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열기구는 뜨지 않았다. 조식을 마친 뒤, 카파도키아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늘의 첫 목적지인 데린쿠유(Derinkuyu) 지하 도시로 향했다. 괴레메 숙소에서 남쪽으로 약 34km 떨어진 이곳은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발견된 36개의 지하 도시 중 가장 크고 깊은 규모를 자랑한다.
다행히 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온화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낯설었고, 숲과 나무 하나 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의 길은 마치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겼다. 전날의 긴 이동에 비해 오늘은 몸도 마음도 가볍게 도착했다.
지하 도시 입구 광장에는 이미 많은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한국 관광객을 태운 버스도 두 대나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니, 터키 아이스크림 장수가 능숙하게 한국말로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한국말을 건네는 현지인을 마주할 때마다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첫째는, 그들이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본 것에 대한 묘한 안도감. 둘째는, 이 먼 곳에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다녀갔으면 이렇게 능숙할까 하는 의문.
지하 도시는 유료 입장이었다. 흥미롭게도 입장료는 자국민과 외국인에게 다른 화폐 단위로 적용됐다. 현지인에게는 100리라(약 3,600원), 외국인에게는 13유로(약 2만 원). 외국인은 리라로 결제가 불가했다. 이 이질적인 화폐 차이에서 ‘우리는 지금 관광객’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히 각인되는 기분이 들었다.
"데린쿠유"는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 지하 도시는 최대 깊이 85m, 7층 구조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는 안전상의 이유로 지하 30m까지만 공개된다. 입에 담기조차 숨이 막힐 것 같은 깊이다. 그런데 이 안에 방, 부엌, 교회, 학교, 와인 저장고, 무기고까지 있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무려 2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생존하며 살았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어려운 이야기였다.
지하에는 50개가 넘는 공기 통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식수는 우물에서 끌어다 썼다고 한다. 입구에는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한 거대한 원형 돌문이 있었고, 이는 안쪽에서만 열 수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63년. 한 주민이 집 벽을 허물다 우연히 지하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하 계단을 통해 관람을 시작했다. 복도는 좁고, 통로의 높이는 낮아 몸을 최대한 숙여야만 했다. 계속해서 머리를 부딪히며 걸어가야 하는 어두운 공간은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곳곳에서 당시의 생활 흔적들이 느껴졌다. 그렇게 숨 가쁜 이동을 마치고 마지막 계단을 올라왔을 때, 나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이 흙과 돌을 어떻게 깎아 수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을까?’
‘왜 이렇게 깊은 곳에서 살아야 했을까?’
‘정말 종교 박해만이 이들을 이토록 깊숙이 숨게 했을까?’
깊은 땅속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다. 삶의 치열한 흔적이었고,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비극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깊은 삶을 견디며 살아낼 수 있을까?
이 여정은 단지 ‘관광’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즐거움보다 아픔이 컸고, 감탄보다 경외감이 컸다. 그 깊이만큼이나 무거운 질문이 내 안에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여행기록 2025.5,11 오전 *데린쿠유(Derinkuyu) 지하 도시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