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숨결과 따뜻한 온천수가 어우러진 하루
튀르키예 올루데니즈에서 페러글라이딩을 마친 뒤, 우리는 석회암 온천으로 유명한 파묵칼레 석회 온천(Pamukkale Travertenleri )으로 향했다. 자동차로 약 230킬로미터, 3시간 반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띈 건 한국 단체 관광객들. 그만큼 이곳이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여행지라는 걸 새삼 느껴진다.
입장료를 낼 때는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외국인 기준 30유로(€30), 반면 터키 현지인은 단 100리라(₺100), 우리 돈으로 약 3,600원 수준이었다. 무려 13배나 차이가 나는 이 요금은 적잖이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유적지 보호와 관광 수익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은 이해하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선 설렘을 식게 만드는 요소다. 입장권을 끊자마자 무선 이어폰 하나를 건네주었지만, 이런 ‘선물’보다 요금을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유적지 출입구를 통과하자 사원, 목욕장, 시장터 등 고대 도시의 흔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원은 신앙의 중심지였고, 목욕장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 사람들이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였다. 마치 동네 목욕탕에 모여 오랜 시간 잡담을 나누던 장면이 떠올랐다. 시장터에는 생생했던 상거래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대부분은 무너졌지만, 유적 하나하나가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 주었다.
고대의 숨결, 히에라폴리스 극장 입장하자마자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산 위에 자리한 히에라폴리스 고대 극장이었다. 오르막길은 가파르지 않았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 그늘 한 점 없이 걷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히고 숨이 가빠왔지만, 정상에 다다르자마자 펼쳐진 웅장한 고대 로마 양식의 극장은 그런 수고를 잊게 만들어 주었다.
1만 명 가까이 수용할 수 있다는 이 극장은, 어제 카쉬에서 본 안티페일로스 극장보다 훨씬 크고 당당했다. 지금도 음악회와 공연이 열리는 이곳은, 수천 년 전 그날의 노래와 연극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잠시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 마음이 설렜다.
역사의 향기를 담은 박물관
극장에서 내려오는 길목에는 히에라폴리스 고고학 박물관이 자리했다. 로마 시대 목욕탕을 개조한 작고 아늑한 공간이었다. 석관, 조각상, 주화, 도자기 등 다양한 유물을 통해 이 땅에 스며든 깊은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숨결이 공간마다 묻어 있어 무거우면서도 의미 있는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하얀 언덕을 타고 흐르는 온천수
드디어 파묵칼레의 핵심, 석회암 온천 구역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면 눈 덮인 하얀 언덕 같던 곳이 가까이 다가가자 석회암 계단 사이로 온천수가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신발 속에 넣은 뒤, 한 손에 신발을 든 채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갔다. 물이 피부를 감싸며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주의할 점도 있었다. 노란빛이 도는 부분은 매우 미끄러웠다. 그곳을 피해 우윳빛 석회암을 밟으며 조심조심 걸었다. 햇살이 하얀 석회암에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였고,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근 채 언덕 너머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은 마치 꿈속을 걷는 듯한 황홀함을 선사했다.
파묵칼레 온천수는 피부병과 관절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대부터 수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아 몸과 마음을 치유했던 이유가 분명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자연이 주는 거대한 힐링 스파였다.
다시 찾은 식당에서의 따뜻한 저녁
오늘은 파묵칼레에 머물기로 했다. 카파도키아에서 기후 영향으로 열기구를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곳에서도 열기구가 뜬다고 하여 새벽에 뜨는 장면을 보기로 했다. 아들은 열기구를 타는 것보다, 뜨는 과정을 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했다. 사실 다음 일정도 있고 해서 탑승은 예약하지 않았다.
숙소에 짐을 푼 뒤,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아들이 작년에 다녀간 곳이라며, 주인아저씨가 매우 친절했던 것이 인상 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주인아저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들을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아들은 주인아저씨에게 음식 주문을 하면서 작년에 이곳 식당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그제야 기억을 떠올리며 반가워했다.
주인아저씨에게 열기구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았다. 마침 그의 사위가 열기구의 '파이어맨'으로 일하고 있다며 지금 식당에 와 있다고 했다. 사위는 열기구는 바람과 습도 등 기후 조건에 매우 민감해 내일 새벽이 되어야 뜰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식사 후, 주인아저씨는 따뜻한 홍차를 가져다주었고, 이어 두 차례나 또 다른 차를 내주었다. 그 정성에 감사한 마음이 컸지만, 동시에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따뜻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식당을 나서며 주인아저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오늘 찍은 사진을 꺼내 함께 추억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다시 올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기록 2025.5.13 오후 *파묵칼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