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린 뒤, 삶의 공항에 다시 섰다
튀르키예 여행을 마치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대기 시간을 포함해 총 18시간. 긴 여정을 지나 다시 밴쿠버 땅을 밟았을 때,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비 덕분에 공항 안에는 겨울 옷을 꺼내 입은 사람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캐나다는 계절에 맞춘 옷차림보다는 날씨에 맞춘 실용적인 옷차림이 일상이다. 여름이라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겨울처럼 입는다. 언제나 ‘기후에 맞게’ 입는 이곳의 문화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내가 사는 곳이 되었으니까. 이번 밴쿠버 공항은 과거의 ‘기러기 이별의 장소’가 아닌, 이제는 나의 삶이 시작되는 따뜻한 문턱이었다.
전철은 퇴근 시간의 인파로 북적였다. 창밖 풍경보다 전철 안의 풍경이 더 인상 깊었다. 이 모습은 마치 과거 한국의 ‘지옥철’을 떠올리게 했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출근 전쟁에 푸시맨까지 등장하던 시절, 혼자 힘으론 전철 안으로 몸을 맡기기도 어려웠던 그때의 나는, 그 고단함마저도 이제는 추억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은 늘 추억을 만든다. 핸드폰 안에 쌓여가는 수많은 사진들, 주변 사람들과 나눌 이야기들이 늘어나고, 새로운 세계의 조각들이 삶 위에 이정표처럼 남는다. 수억 거리 먼 땅이라도 직접 걸으며 밟았다는 흔적은, 비행기라는 문명의 도구 없이는 불가능했을 여정을 가능케 했다.
음식은 낯설었지만, 그 또한 여행의 일부였다. 때론 한국 음식이 그리웠지만, 현지 음식이 주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특별한 동행은 바로 아들이었다. 출장 중 시간을 내어 부모를 위해 가이드가 되어준 아들. 이미 한 번 다녀온 여행지임에도 부모를 위해 다시 같은 길을 걸어준 아들의 마음은 깊었다. 이건 마치 본 적 있는 영화를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다시 보는 것처럼, 전개를 다 알지만 또 보게 되는, 그 배려의 시간이었다.
예전에 전주 여행 중 한 호텔 사장님이 말하길, “딸과 여행 온 가족은 종종 보았지만, 아들과 여행 오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딸을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을 낳으면 버스 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엔 여러 해석이 엇갈린 생각도 있지만, 그만큼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흔치 않고, 그래서 더 특별하다. 아들이 결혼을 했음에도 부모와 여행을 함께 한다는 것.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여행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는 건, 아직 우리가 서로를 품고 있다는 증거다.
기러기 생활을 끝낸 후, 이젠 이별의 공항은 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언제나 공항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곳이 되었다.
이번 튀르키예 여행은 특별했다. 새로운 풍경,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나눈 시간이 특별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직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건강과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삶은 소풍이자 여행이다. 이번 여행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여정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여정이 어디일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이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내 삶의 한 페이지를 따뜻하게 장식해 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 글은 튀르키예 여행을 마무리하며 쓰는 마지막 글이다. 마지막은 언제나 아쉽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여행기록 2025.5.15 *밴쿠버 공항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