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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비를 맞는 것도 일상이다

비를 불편함이 아닌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by 김종섭

한국에서 비는 늘 '피해야 할 것'이었다. 하늘이 흐리면 자동으로 우산을 챙기고, 비 소식이 있으면 하루의 계획부터 다시 세웠다. 비를 맞는 건 작은 사건이 아니라, 옷을 갈아입어야 할 큰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캐나다, 특히 밴쿠버에서는 달랐다. 잔잔한 이슬비나 안개비처럼 내리는 비가 잦은 이곳에서 사람들은 우산 없이 거리를 걷고, 자전거를 타며, 강아지와 산책을 즐겼다. 비를 맞지 않으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함께 걷는 모습이 당연한 듯 펼쳐졌다.

처음엔 그 광경이 낯설고 어색했다.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걱정했다.
‘저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우산을 쓰지 않고 왜 굳이 비를 맞고 다닐까'?


익숙한 한국식 사고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걷는 모습은 어쩐지 비 오는 날에도 체통을 지키며 걷던 옛 선비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허둥대지 않고, 조용히 비를 맞으며 나아가는 모습. 물론 캐나다 사람들이 선비 정신을 본받은 건 아니다. 이곳의 잦은 비에 익숙해지며 생긴 자연스러운 습관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삿갓을 쓰고 조용히 걷던 양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은 어쩌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르며 나도 우산을 들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모자를 눌러쓰거나, 비를 그냥 맞으며 걷기도 했다. 불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옷이 다소 젖긴 해도 곧 말랐고, 젖더라도 비의 애교쯤으로 봐주었댜, 이외로 우산을 접고 펴는 번거로움 없이 손이 자유로운 편리함도 있었다.

무엇보다, 비를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주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렇게 나는 비를 피하려 애쓰기보다, 내리는 비가 꼭 우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버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에 와서 처음엔 비가 싫어지기도 했다. 끝없이 내리는 회색빛 비, 그리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다니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딘가 무심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비에 관심조차 없는 듯한 모습은, 어느 순간 내게는 비를 불편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도 그들의 태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비를 불편함으로 여기기보다, 삶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동안 많은 것을 ‘불편’으로 여겼다. 젖는 것, 더러워지는 것, 예상치 못한 일들. 그래서 늘 대비하고,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변수투성이었다. 모든 걸 통제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는 연습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제는 나도 가끔은 일부러 우산을 들지 않는다. 비를 맞으며 걷는 그 순간이 때론 신선하고, 자유롭기 때문이다. 마음의 먼지를 씻어주는 듯한 그 느낌은, 어느새 내게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우산을 쓰지 않는 문화'는 어쩌면
“이 비는 곧 그칠 것이다”라는 믿음,
그리고 삶의 작은 변수쯤은 받아들일 줄 아는 여유를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젖는 불편함보다,
손이 자유로운 가벼움.
그 속에서 나는 조금씩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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