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저축이자, 때로는 비상금처럼 남겨두는 마음의 여유였다
밴쿠버에서 직장생활을 십 년 넘게 했다. 이민자의 삶은 늘 새롭고 버거웠고, 한편으로는 낯선 기준에 적응해 가는 시간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바로 ‘휴가’였다.
한국에서 일할 땐 휴가를 쓰는 것 자체가 눈치 게임이었다. 쉬는 날이면 오히려 미안함이 먼저 들었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다. 캐나다에 와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눈치 대신 ‘아껴 써야 한다’는 새로운 부담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캐나다 직장인의 삼분의 일이 유급휴가를 다 쓰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다. 처음엔 놀랐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경험이 그 통계 속 현실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가는 본래 쉬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휴가를 ‘노는 시간’이 아닌 ‘대비하는 시간’으로 남겨두고 있다.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가족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어떤 위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연차다. 하지만 유급 병가 제도가 없는 곳도 많다.
특히 젊은 세대나 비정규직처럼 보호장치가 부족한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겪었을 것이다. 독감에 걸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조차,
하루 쉬면 줄어드는 임금이 걱정되어 억지로 출근했던 날이 많았다. 몸보다 통장 잔고가 더 아팠던 날들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연차를 쌓는다. 마치 저축하듯 휴가를 남겨둔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를 위해. 하지만 그 ‘언젠가’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렇게 휴가는 점점 쉼이 아닌 보험처럼 변해간다.
이건 캐나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직장인들도 여전히 쉬는 것을 미안해하고, 퇴근 후에도 업무의 잔상을 떨쳐내지 못한다.
한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에서는 무려 410만 명이 업무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우리는 점점 ‘쉼’이라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그럴 때 문득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스테이케이션이라는 말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하루쯤 집에 머물며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 그저 조용히 책을 읽거나 차 한 잔을 마시는 일상이, 진정한 휴가가 될 수 있다.
스테이케이션은 ‘머무르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다.
한국에서도 한때 호캉스나 홈캉스가 유행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런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무더위를 피해 간다고 말하면서도, 실상은 그 무더위를 즐기기 위해 떠나는 경우가 많다.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며 줄을 서고, 북적이는 해변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움직인다. 더위를 피한다기보다, 오히려 더위를 즐기러 가는 여름휴가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여름은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든다.
지금도 많은 직장인들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쯤 마음 놓고 쉴 수 있을까.
여름의 밴쿠버는 분주하다. 거리엔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넘쳐나고, 호텔은 일찌감치 예약이 끝난다.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혼자만의 하루, 나를 위한 시간.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숨을 고를 수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살기 위해 일하는가, 일하기 위해 사는가.
계란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 같은 질문처럼, 쉽게 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짜 쉼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쉼은 누군가가 허락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건네는 가장 솔직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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