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차 멜로디에 멈춰 선, 캐나다의 여름 저녁

캐나다의 아이스크림차, 그리고 한국의 ‘아이스께기’라는 말의 추억

by 김종섭

저녁 7시. 하지만 여전히 한낮처럼 밝다. 해가 긴 여름은 무덥지만, 하루가 길어 느긋한 여유를 준다.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와 함께 섞여 반복되는 그 음은 화물차의 후진 경고음으로 쓰이는 소리 같기도 했지만 또 다른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음이기도 했다. 나중에야 그것이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흘러나온 ‘Omni Music Box – Turkey in the Straw’라는 곡임을 알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소리가 궁금해 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가보았다. 연두와 보라가 섞인 밝은 색의 아이스크림 트럭이 아파트 단지 광장 한편에 서 있었다. 트럭 전면에는 큼직한 캐나다 국기가 새겨져 있었고, 옆면에는 ‘벤앤제리스(Ben & Jerry's)’ 아이스크림 광고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트럭은 다소 낡아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인은 일흔을 훌쩍 넘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래된 한국의 여름 기억이 되살아났다.

캐나다 아파트 단지 광장에서 만난 아이스크림 트럭. ‘Ben & Jerry’s’ 광고와 아이들과 부모가 줄 선 모습이 여름 풍경을 담는다

아이스께기라 불리던 그 시절의 여름

어릴 적에 아이스크림을 ‘아이스께기’라 불렀다. 모양은 색깔만 입혀진 막대가 꽂힌 얼음과 다르지 않았었다. 지금 맛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 냉장고가 흔치 않던 시절,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멘 아이스께기 장수 아저씨가 동네를 돌며 외쳤다.


아이스~께기요—!”

확성기 하나 없이도 그 목소리는 골목의 정막을 깨기에 충분한 소리였다. 한여름 매미가 울듯 아이스께끼를 외치는 소리는 곧 무더운 한 여름의 신호와 같았다. 가게에서는 냉장고가 없어 아이스크림을 팔지 않았다. 유일하게 여름에만 아이스께기 장수가 와야 먹을 수 있었다. 돈 대신 병이나 고철을 들고 가면 아이스께기로 바꿔주던 또 다른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장수도 있었다.


아이스께기 하나를 손에 넣으면 천천히 오래도록 아껴 먹으려고 핥아먹었다. 혀 끝에 퍼져가는 단맛과 시원한 감각은 어린 시절 여름을 기다렸던 가장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추억은 항상 밝지만은 않다. 친구의 동생은 아이스께기를 사러 소주병을 안고 달려가다 넘어졌고, 병이 깨지면서 날카로운 파편이 가슴을 찔렀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그날 이후, ‘아이스께기’라는 말엔 슬픈 기억이 겹쳐졌다.


사라져 가는 여름의 풍경

이제 캐나다에서도 아이스크림 트럭은 점점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수요는 줄고, 트럭을 몰던 이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오늘 마주한 이 트럭도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마지막 여름을 남기고 사라질 것이다.


며칠 전 마트에서 사둔 아이스크림이 냉동실에 남아 있다. 게다가 아내는 여행 중이다. 혼자 길가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일이 어쩐지 낯설고 머뭇거려졌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트럭 풍경만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스크림 트럭을 보면서 옛날에 아이스께기를 먹던 향수가 낯선 곳에서 뜨겁게 그리움으로 다가섰던 저녁 시간이었다. 그 맛은 이제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되었다.


한국이든 캐나다든, 여름은 늘 무덥지만, 아이스크림 한 입은 속까지 시원하게 적셔준다. 그 맛은 마치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듯한 풍경처럼 마음을 맑게 한다.

오늘도 하루의 끝자락에, 아이스크림 트럭의 멜로디를 따라 떠오른 아이스께기의 기억 속에서, 잠시 여름의 더위를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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