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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즐기는 한여름의 치맥

한국 바비큐 치킨으로 캐나다 여름밤의 특별한 식탁이 있다

by 김종섭

휴일 오후, 더운 공기가 창밖을 뒤덮고 있었다. 냉장고 문을 열다 말고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 바로 치맥이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에 바삭한 양념치킨. 그걸로도 여름밤이 충분히 특별해지던 한국의 일상이 문득 떠올랐다.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던 치맥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양념에 재운 뒤 튀김옷을 입힌 모습과 양념소스, 채썬 양배추

이곳 캐나다 밴쿠버에도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식 바비큐 치킨집이 부쩍 늘었다. 생맥주까지 곁들일 수 있는 곳도 생겨 반가웠다. 우리 집 근처에도 한 곳 있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더 정감이 갔다.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들르며 단골처럼 익숙해졌던 곳이다. 하지만 몇 달 전, 그 가게는 문을 닫았다. 주인이 바뀌고, 간판도 치킨에서 돈가스로 바뀌었다.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그 후로는 이상하게 다른 치킨집에 발길이 가지 않았다. 그러던 오늘,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직접 만들어보면 어때?’


마트에 들러 닭다리 열 개가 담긴 팩을 샀다. 가격은 7.99달러, 한국 돈으로 약 8천 원 정도에 특별히 별다른 손질이 필요 없었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 양념치킨 레시피를 참고해서 양념 소스를 만들었다. 그 맛은 예전 단골집에서 먹던 양념맛과 놀랄 만큼 거의 흡사했다.


닭다리를 양념에 재워 두었다가 몇 시간 뒤에 튀김가루를 입혀 튀겨냈다. 기름이 튈까 봐 아내의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섰는데, 괜히 마음이 이상해졌다. 주방의 주인이 바뀐 기분이었다.

갓 튀겨낸 치킨을 접시에 담았다. 반짝이는 튀김이 먹음직스럽게 완성되었다

튀김을 입에 넣는 순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내도 조심스레 한 입 먹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 정도면, 밖에서 치킨 사 먹을 이유가 없겠네요.”


사실 치킨은 집에서 만들기에는 번거로운 음식이다. 튀김 냄새, 기름 튐, 뒷정리까지 생각하면 대부분은 그냥 배달을 시키거나 외식을 택한다.


하지만 해외에 살다 보면 그런 사소한 수고쯤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깊게 밀려올 때가 많다. 그런 갈증을 스스로 채우는 법을 배운 것이다.


물론 손이 많이 가지만, 그 정성만큼 맛도 만족도도 배가 된다는 생각이 몸을 움직여냈다.


해외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회식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가족 외식도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 음식은 원래가 집밥에서 출발했다. 어떤 음식은 오히려 집에서 만들어야 제 맛이 날 때가 있다는 것을 이민생활에서 터득해 냈다. 외식도 물론 좋지만 정성을 담은 집밥은 집밥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지금처럼 직접 만든 치킨 한 접시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오늘처럼 이렇게 특별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완성된 치킨과 함께 준비된 식탁. 맥주, 소스, 곁들임 음식까지 한 여름밤의 푸짐한 한 상 차림

대부분의 아내들은 여전히 외식을 좋아한다. 그동안 식사 준비와 설거지 등 온갖 가사노동을 도맡아왔기에 그런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외식은 그 자체로 위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젠 주방이 아내의 몫에서 바통을 가끔 가족이 받아 들어 특별한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여름 저녁, 맥주 한 캔을 따고, 갓 튀긴 치킨을 접시에 담고, 식탁에 앉았다. 에어컨 바람이 아닌, 기억 속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보냈던 여름밤이 오버랩되면서 익숙하지 않은 이국의 저녁이 조금은 따뜻하게 느껴졌다.


치맥엔 그 시절 여름밤의 기운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친구의 웃음소리, 무더운 땀을 식혀주던 시원한 바람, 그리고 함께 나눴던 젊은 날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오늘 밴쿠버의 부엌에서 꺼내든 그 맛은 그래서 더 깊고 오래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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