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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함

사라진 직장과 사회적 정체성,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명함

by 김종섭

아침의 시간,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분주하다. 인도는 물론, 차량 행렬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근처 쇼핑몰은 문을 닫은 채 오픈 준비에 한창이고, 길가의 보수 작업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했는지 벌써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잠시 걷는 동안에도, 세상은 ‘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곧 그들의 명함이었고, 그 명함은 지갑 속 한 장의 신분증처럼 그들의 현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명함을 잃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지갑에서 꺼내 건네며 명함 한 장으로 간단히 나를 소개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직접 말로 설명해야 했다. 명함이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공허함을 안겨주었고, 때로는 내 자존심까지 건드렸다.


작년에 한국에 머물렀을 때,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자연스럽게 현재의 근황, 특히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이 가 많았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명함을 내밀면, 나는 내밀 것이 없어 순간 작아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한 곳에서 한 할아버지를 만나 명함을 받아 들었다. 명함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할아버지'라는 글귀가 회사명이나 직책 대신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름, 휴대폰 번호, 이메일 주소도 함께였다. 그는 명함에 담긴 글귀처럼 따뜻하고 진심 어린 사람이었고, 그 순간 나는 ‘명함이 꼭 직업으로만 증명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느꼈다.


예전의 나는 명함을 단순한 연락 수단이 아닌, 회사명과 직책, 그리고 권위를 담아내는 상징물로 여겼다. 마치 작은 가문이 새겨진 증표처럼, 그것이 곧 출세와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할아버지의 명함은 퇴직이 없는, 자신만의 색깔을 간직한 영원한 명함이었다.


요즘은 전화번호 하나만 있어도 상대의 신상이 거의 다 드러나는 세상이다. 브런치스토리,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새로운 명함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종이 한 장의 명함은, 한때 나를 세상에 증명하던 작은 상징이었다. 이제 그 명함은 없지만, 그것이 있었던 자리만큼의 흔적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사라져 버린 명함처럼, 그 시절의 나와 내가 누리던 시간, 나를 정의하던 사회적 정체성도 어느새 먼 기억 속으로 흘러갔다.


그렇지만 떠난 것들을 그리워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시간들로부터 나를 조금씩 되짚어본다. 명함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모든 순간과 경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에, 나는 가끔 그 빈자리에 머물러 오래 바라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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