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춘

무모했지만, 빛나던 계절

by 김종섭

오래된 유행가 한 구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나이가 된 걸까. 청춘에 관한 이야기나 노래만 들려와도 금세 내 과거와 이어진다.


문득 들려온 노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오래 머물렀다. 젊을 땐 그저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던 노래였는데, 이제는 가사 하나하나에 마음이 머문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구절이 예전과는 달리 묵직하게 다가온다.


청춘의 시절에는 왜 그토록 무모했을까. 무작정 앞만 보며 달렸고, 돌아가는 법을 몰랐다. 아무리 먹어도 늘 배가 고팠고, 종일 뛰어다녀도 쉽게 지치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조금만 먹어도 금세 배가 부르다. 그때의 왕성한 체력은 이제 남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진다.


옷차림도 달라졌다. 한때는 원색이 잘 어울렸고, 그 원색이 곧 청춘의 상징처럼 풋풋한 이미지를 풍겼다. 값싼 옷조차 브랜드 못지않게 빛나 보였고, 아무렇게나 걸쳐도 멋이 났다. 그러나 지금은 어두운 색이 오히려 편안하고, 원색은 낯설게 다가온다.


어제 아내와 함께 옷을 사러 갔다. 매장 앞 마네킹이 입은 재킷에 잠시 설렘이 일었지만, 막상 입어본 내 모습은 거울 앞에서 금세 무너졌다. 배를 움켜쥐고 숨을 참으면 옷맵시가 살아나는 듯했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숨을 내쉬는 순간, 거울 속엔 옷이 아니라 불룩한 배가 청춘을 앗아간 듯한 모습만 남아 있었다. 원색의 옷은 여전히 멋져 보였고, 아직도 어떤 옷이든 소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다.


옷뿐만이 아니다. 사진을 찍어도 같은 감정이 든다. 젊은 날엔 대충 찍어도 착각일지라도 마치 화보 속 모델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사진 속 나를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괜히 찍었구나” 하면서도 여전히 다시 포즈를 취해본다. 언젠가 한 장쯤은 만족스러운 사진이 나오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결국 사진은 정직했고, 나는 그 앞에서 묘한 아쉬움을 느낀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간이역이자,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계절과 같다. 내 청춘이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처럼, 지금의 젊은이들 역시 자신들만의 빛나는 시간을 걷고 있을 것이다. 현실이 거칠고 울퉁불퉁했을지라도 청춘은 그 길을 꽃길로 바꾸어 놓았다. 계절로 치면 활짝 꽃피는 춘삼월과 같았다.


나는 오래전 이미 그 춘삼월을 끝냈다. 끝나지 않을 줄 알았던 봄, 그러나 달콤한 착각이 깨지는 순간 청춘은 이미 손이 닿지 않는 곳에 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느 계절에 서 있을까. 풍성했던 가을을 지나, 낙엽이 다 떨어진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쯤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니다. 길 위에 다시 꽃을 피울 수는 없어도, 마음속에 작은 봄을 피워내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그것이 지금 내 삶이 향하는 또 하나의 계절일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