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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끝없이 남을 줄 알았던 젊은 날의 시간들

by 김종섭

젊은 날의 시간은 끝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보면, 그때 흘려보낸 시간들이 가장 먼저 내게서 사라진 것임을 깨닫는다.


“시간을 아껴 써라. 시간은 금이다.”

부모님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상처를 입었을 때 들었던 “시간이 약이다”라는 위로 역시 익숙하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만큼은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어린 시절에도 시간은 내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놀고 싶어도 공부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은 늘 발목을 붙잡는 존재였다.


시간은 항상 일정하지 않았다. 휴일의 시간은 붙잡고 싶을 만큼 빨리 흘러갔고, 일할 때는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특히 군대 시절, 시간은 바깥세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하루는 끝없이 길었고, 자유에 대한 갈망은 끝이 없었다. 그 긴 시간을 잊기 위해 억지로 생각 속에 군대의 하루를 꾸겨 넣곤 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도 간다”라는 말이 자주 인용되던 것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결국 느리게 흘렀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겹도록 느리던 군대의 시간조차 지금은 묘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시간이라는 것은 참 묘하다. 지나가고 나면 추억도 남지만, 후회도 함께 남는다. 젊었을 때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살았지만, 그 안에서 청춘의 시간은 길고 행복하게 누렸다.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느낄수록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 버려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제 60대가 된 나는, 눈을 뜨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별히 하는 일이 없을수록 또한, 일이 단순할수록 시간은 더욱 빨리 지나간다. 마치 생각의 흐름이 시간을 앞서가는 것처럼, 하루가 어느새 끝나 버린다.


시간에는 분명 한 사람 한 사람 공평하게 주어진 할당량이 주어진 시기가 있었다. 공부하고 꿈을 키울 시간, 돈을 벌고 출세할 시간, 사랑하고 여행할 시간. 그때 무심히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지금 돌아보면 내게서 사라진 시간이다.


물론 사랑과 여행의 시간은 아직 남아 있지만,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여행은 특히 체력적 뒷받침이 필요한데, 과연 지금의 나에게 예전만큼의 힘이 남아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꽃은 피어 있을 때 향기를 남기듯, 젊음도 그때 누려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일까, 긴 걸음을 요구하는 유럽 여행은 젊을 때 떠나야 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유럽의 도시들은 대부분 오래된 골목과 계단,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 위에 세워져 있다. 대중교통보다 두 발로 직접 걸어야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곳들이다. 결국 발걸음을 옮길 힘이 있을 때 가야만, 그 여행의 진짜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라도 남은 시간을 붙잡아 소중히 쓰고 싶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밤늦도록 놀다 통행금지에 걸려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경험도 떠오른다. 시간은 사람이 만든 틀 안에서도 엄격하게 존재했다. 노는 시간에도 제한이 있다는 사회의 규범 속에서, 즐거움과 불편함이 함께했던 추억이다.


요즘은 다시 오지 못할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부모님께 살아계실 때 더 잘하지 못한 것, 주변 사람들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것. 이런 후회가 불현듯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부모님 생각에 후회가 들 때, 비로소 철이 들어 어른이 되어간다”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시간을 보내는 일은 늘 불충분했음을 느낀다. 아마 지금도, 이렇게 흘려보낸 순간들을 언젠가 또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친구, 선후배, 스쳐간 모든 사람들. 나이가 들수록 기억 속 그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을 붙잡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그 주어진 시간과 추억을 헛되게 쓰지 않았다는 증거라 스스로 위로한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내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시간을 붙잡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이미 추억이 되었지만, 남은 시간은 어떻게 써야 할까. 그것이 지금의 내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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