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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매년 반복되는 연말의 한 장면

크리스마스트리 앞, 부모와 아이가 함께한 순간

by 김종섭

12월이 시작되는 날, 내가 사는 동네 쇼핑몰 중앙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진다. 반짝이는 장식을 바라보면 크리스마스의 설렘보다 먼저, ‘아,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스며든다. 그리고 그 트리 옆에는 매년 변함없이 산타 할아버지도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은 ‘진짜 산타’를 미리 만나려는 듯 부모의 손을 잡고 트리 장식이 있는 포토존으로 모여든다. 오늘도 한 유아가 산타의 무릎 위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에게 산타는 여전히 낯선 존재다. 하얀 수염과 붉은 옷, 커다란 몸짓에 겁을 먹은 아기는 금세 울음을 터뜨릴 듯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엄마는 애써 아이를 달래고, 사진기사는 아기의 웃음 한 번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카메라와 아이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깐의 웃음을 얻기 위해 부모와 사진기사가 함께 만들어내는 풍경. 사진을 찍고 나서 엄마는 아이를 안고 산타에게 인사하고 트리 사이로 사라졌다.


수년째 캐나다에서 보아온 연말의 풍경이다. 하지만 그 장면 속에는 매번 다른 마음이 담겨 있다. 한 장의 사진을 남기려는 엄마의 절박함, 한 해를 정리하며 아이와 이 순간을 기록하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 그리고 오늘이라는 하루를 ‘추억의 한 장’으로 남기려는 작은 간절함까지. 나중에 아이가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된다면, 비록 기억에 남지 않는 순간일지라도, 그날 부모가 품었던 마음만큼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언뜻 보면 매년 비슷하게 반복되는 풍경이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 안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한 해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남겨 주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가끔은 손님이 없을 때 혼자 앉아 있는 산타를 보게 된다. 커다란 트리 아래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인데, 그럴 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의 모습과는 다른, 조금은 상업적인 풍경처럼 느껴져 씁쓸할 때도 있다. 아무래도 ‘선물을 주러 오는 산타’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파트 현관 로비 게시판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로비에서 트리 장식과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하세요. 12월 12일 금요일 오후 5시.”

아파트에 살면서 트리 장식 행사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아마 첫 번째 이유는 ‘전부가 외국인들이다’라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꾸미는 일이 설레는 경험이었지만, 해외에 살면서부터 어느 순간 그런 설렘조차 잊고 살면서, 참여하지 않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워져 버린 것 같다.

올해는 다르게 해보고 싶다.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트리를 꾸미고, 그 안에서 작은 연말의 온기를 느껴보고 싶다.

거리에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울리고, 푸드뱅크와 봉사단체들은 누군가의 겨울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잠시 옛날 한국에서 맞던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캐롤이 흘러나오던 오래된 레코드 가게, 손수 장식을 만들던 예전의 트리… 세상은 많이 달라졌지만, 연말에만 느껴지는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한 해의 끝에서 우리는 늘 비슷한 풍경을 마주한다. 기다림, 기록,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 한국이든 캐나다든,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이 평범한 순간들이 바로 매년 반복되는 연말 풍경을 여전히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일지 모른다.


​➡️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 https://omn.kr/2gc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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