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식탁에 차려진 고향의 맛... 한인 마트 밀키트로 달래는 행복
가끔은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가 있다. 물론 캐나다 현지 한인 식당에서도 한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종류도 한정되어 있고 대중화되어 있지 않기에 그 본연의 맛이 더 간절할 때가 있다.
아내가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인 마트에서 장을 보아왔다. 예전 장바구니 내용물과는 달리, 오늘은 특별했다. 이미 가공되어 포장된 밀키트 형식의 청국장과 양우탕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사실 순댓국이나 양우탕이 그리워지던 찰나였다. 한국에서는 문밖만 나가면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음식인데, 이곳에서는 마치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듯 특별한 대우를 받는 느낌이다.
먹는 것만으로 향수를 달래고 추억까지 소환하는 힘이 음식에 담겨 있음을 갈수록 절실하게 느껴간다.
다행히 밴쿠버에는 한인이 많이 살아 한인 마트도 지역별로 잘 갖춰져 있다. 이민자의 삶에 있어 예전에는 한국에서 가져와야 먹을 수 있던 식재료가 이제는 한국 마트 이상으로 현지 마트의 품목이 다양하다. 덕분에 생활 속 사소한 빈틈까지도 채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산다.
오늘처럼 한인 마트에서 음식을 밀키트 형식으로 조리·포장하여 판매하기 때문에, 평소 간절했던 한국 음식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 간다. 더욱이 가격 또한 한 그릇에 9.99불 정도로,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만한 만족감을 주는 한 끼 식사로는 꽤나 착한 가격인 셈이다.
한인 마트가 아닌 현지 마트에 가면 훈제되어 진공 포장된 갈비나 족발 등을 판다. 한 번은 족발 맛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해서 사다 먹었다가 강한 향신료 냄새 때문에 입도 대지 못하고 버린 적도 있다. 서양식 훈제 특유의 자극적이고 생경한 향이 입맛에 맞지 않았던 탓이다. 그 외에도 오리고기 훈제나 햄 종류 등 겉모양은 한국 음식과 흡사해 보여도, 막상 먹어보면 특유의 향신료 냄새 때문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한인 마트에서 한국인의 손을 빌려 직접 만든 음식이어야 진정한 한국 음식의 풍미를 가지게 된다.
아내는 청국장, 나는 양우탕으로 각자가 좋아하는 메뉴로 오늘 저녁 밥상이 차려졌다. 사실 청국장은 냄새 때문에 개인적으로 조금 꺼려지기도 한다. 이웃집에 오늘 끓인 청국장 냄새가 어쩌면 불청객 같은 고약한 냄새로 둔갑하여 퍼져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맛만큼은 냄새의 고통쯤은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감동을 준다. 양우탕은 특별히 뚝배기에 끓였다. 팔팔 끓여낸 채로 먹는 맛이 탕의 또 다른 매력이다. 한국의 탕 요리에는 어쩐지 소주 한 잔이 곁들여져야 제맛의 조합을 이룬다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소주 한 잔을 곁들였다. 뜨끈한 국물이 넘어가니 타국 살이의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다.
요즘은 먹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특히 해외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음식을 통해서든 특별한 기억들이 피어나곤 한다. 한국인은 흔히 '밥심'으로 산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어떻게 빵을 주식으로 먹고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뚝배기에 펄펄 끓는 음식을 식혀가며 먹는 이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요즘 전 세계 사람들이 K-푸드에 열광하는 이유도 아마 이 뜨거운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아내가 사 온 음식 덕분에 깊은 맛을 다시 음미해 본 저녁 밥상이 되었다. 든든하게 채운 것은 배뿐만이 아니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